그리스도인 가정의 정치적 책임

[ 주간논단 ]

장신근 교수
2022년 03월 15일(화) 08:11
험난한 과정을 통하여 마침내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민주시민으로서 우리의 권리와 책임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정치'에 참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짐 윌리스의 말처럼 "개인적이지만 사적이지는 않다." 즉, 기독교 신앙은 먼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전제하지만, 동시에 세상과 동떨어진 사사화된 신앙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정치라는 관점에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도록 요청한다.

제자와 시민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기 위한 든든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절실하다. 이번 대선에서도 잘 드러난 것처럼, 한국 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지만 오늘의 한국 정치는 여전히 국민들의 기대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지 못하고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의 핵심인 건전하고 상식적인 대화, 토론, 타협을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사회적 신뢰 상실로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 현장에서의 거버넌스도 여전히 일방적이며 비민주적 행태가 우세하다. 그 이유는 사회의 축소판인 학교와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생활화된 민주주의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민주주의의 인프라가 부실한 까닭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종교교육 학자인 조지 앨버트 코우(1882-1951)는 '종교교육 사회론(1917)'에서 '하나님의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소개하면서 당시 허약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학교와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에 기초한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결정적인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하여 가정에서 민주시민 덕목 형성을 위한 종교교육 원칙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1) 가정에서부터 양성평등을 삶 가운데 실천해야 한다. 2) 토론과 협의를 통하여 중요한 가정사를 함께 결정해야 한다. 3) 가정 밖의 타인을 위한 섬김에 참여해야 한다. 4) 가족 구성원 개개인들이 스스로 주체적 결정을 할 수 있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5) 놀이와 여행 등 가족 단위 활동을 통하여 공동체 의식을 양육해야 한다. 6) 가정이 사회 개혁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7) 가정의 재산도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 코우는 하나님 나라의 신앙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부터 민주주의의 이러한 기본 덕목들을 제대로 교육해 나갈 때 사회에서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100여 년 전 미국의 상황에서 나온 내용이지만 지금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원칙들이다.

물론 가정에서의 민주주의 인프라 형성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평생교육 과정이다. 정치란 우리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공적신앙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세상의 정치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종말에 완성하실 그분의 나라를 우리를 통하여 세워가기 원하신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세상의 정치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수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가정에서 자녀들을 대상으로 어린 시절부터 민주시민을 위한 덕목들을 삶의 과정을 통하여 형성해 나가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해야 할 핵심적인 사명 가운데 하나이다.

가정에서부터 신앙적 정체성에 기초한 민주시민의 품성을 잘 양육해 나갈 때 민주주의의 체질이 튼튼해지고 민주적 법률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교회 내의 민주적 거버넌스 형성도 이를 통해서 가능하다. 대선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가정이 수행해야 할 정치적 책임을 다시 생각해 본다.



장신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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