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권이 우선이다

[ 주간논단 ]

고시영 목사
2022년 03월 01일(화) 08:54
목회는 누가 하는가? 목사가 한다. 교회는 누가 지키는가? 장로와 일부 교인들이 한다. 목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목회지를 옮길 수가 있다. 은퇴를 하면 대부분 교회를 떠난다. 그러나 장로는 은퇴를 해도 그 교회에 남아 일생을 마친다. 일부 교인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끝낸다. 그래서 목사와 장로, 교인들은 필연적으로 공동운명체이다.

그런데 목사에게는 3가지 권리가 있고 이것을 장로들과 교인들은 인정해야 한다. 생존권과 인격권과 영권이 그것이다. 생존권이라는 것은 목사도 다른 인간과 동일하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이고, 인격권은 목사도 다른 인간과 똑같이 인격적으로 대접을 받을 권리이고, 영권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권한을 선용해서 하나님과 교인들을 진심으로 섬길 권한을 의미한다.

이 세 가지 권리 중에 생존권이 우선이다.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두 가지 권리도 죽는다. 성경을 보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후에 채소와 과일을 주시면서 이것을 먹어야 산다고 하셨다. 생존권은 기본권이다. 요시아 왕의 종교개혁도 생존권이 무너져 흩어져 버린 레위지파의 생존권을 국가가 보장해 줌으로서 시작된다. 십일조도 그 일부는 레위지파의 생존을 보장해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도이다. 맹자의 역성혁명 이론도 왕이 백성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지 못하면 왕을 바꿔야 한다는 이론이다.

나라 정치의 원리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는 결국 버린다. 그런데 과연 한국교회는 목사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고 있는가? 아니다. 각자 도생하라고 외면하고 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단념하고 있다. 목사의 몰락은 곧 교회의 몰락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오늘 한국교회의 무너짐은 단순히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원인이 있고 그 중 목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우리 교단은 목사들의 생존권을 지켜주고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몇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연금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어떤 형태로든지 모든 목사들이 연금에 가입하도록 해야 하며, 어려운 목사들을 위해 연금 보조금을 주는 제도를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운영을 투명하게, 효율적으로 해야 하며 목사들에게 불신을 당하지 않도록 총회가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감독과 운영을 분리해야 한다. 이사회는 운영을, 가입자회는 감독을 하도록 이원화하여야 한다.

둘째, 기금을 확충하는 방법을 다양화해야 한다. 교인들이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일정 규모가 넘는 교회는 상납금 외에 연금 이사회에 일정액을 헌금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큰 교회는 큰 교회로서의 의무를 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셋째, 총회주일처럼 목회자 주일을 정해 목사들의 생존고통을 하나님께 아뢰고 헌금을 해서 연금 이사회에 보내도록 해야 한다.

넷째, 총회에 목사들을 위한 사회복지제도를 만들어 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각종 방법을 연구하여 이를 시행하게 해야 한다. 국가의 복지제도가 날로 좋아지는 데 이를 알지 못해 목사들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현상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중세 피렌체 공화국의 번영을 다룬 시오노 나나미는 두 가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국가 세금을 낭비하는 죄와 기업가들이 이윤을 내지 못하는 죄가 그것이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첨가하고 싶다. 목사들의 생존권을 지켜주지 못하는 죄가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목사들에게 한마디 간절하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목사들의 생존권은 교인들이 지켜주어야 하는데 교인들은 목사다운 목사들을 지켜주지 목사답지 않은 목사는 외면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의 생존권은 목사다움에서 나온다. 걱정만 하지 말고 목사의 길을 진실하게 걸어야 한다. 욕심 부리지도 말고, 교만하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고.



고시영목사 / 전 장기발전연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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