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화가 홍종명 작품 '그리스도'

[ 이야기박물관 ]

신상현 목사
2022년 03월 02일(수) 16:54
화가 홍종명의 유화 작품 '그리스도'. oil on canvas, 38*53cm
"이 세상에는 변하는 것이 많지만 그리스도는 언제나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굳게 설 수 있도록 하여주소서…"

영원과 고독, 신앙이 무엇인지 깨치기 위해 예술작업을 하는 화가. 실향의 아픔과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을 향토색 짙은 작품으로 승화시킨 화가. 평양 태생으로 한국전쟁 때 월남한 홍종명(洪鍾鳴, 1922~2004)의 기도다. 그는 동경 제국미술학교(현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유학했으며, 제주와 서울에서 수많은 제자들을 길러냈다. 또한 교회의 장로로서 캔버스 앞에서의 깊은 묵상으로 탄생시킨 작품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홍종명의 유화작품 '그리스도'는 1963년 일본 현대기독교작가전의 초청작으로, 작품 속 예수님의 얼굴은 홍종명 특유의 흑갈색 위에 나타난다. 우리의 질고와 슬픔을 담당했으나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예수의 모습이다. 이사야 53장에 기록된 고난의 종을 생각했을까. 액자 뒷면에는 '이사야적 고난의 우자(愚者)' 라는 메모가 남아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작가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이 연약한 육체로 오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를 표현했다.

그림 속 예수님의 이마와 뺨은 난도질 당했고, 두꺼운 물감칠 위를 긁어내린 머리카락과 수염은 거칠기만 하다. 온 세상의 구원을 짊어진 어깨는 흠모할만한 것 없이 작고 초라하며 세상을 축복하시는 오른손 역시 상처투성이다. 극한의 고난 속에서도 진리와 사랑으로 충만한 예수의 눈동자는 아래로 향해 낮은 곳의 사람들을 연민한다. 굳게 다문 입술은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함이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은' 우자(愚者) 예수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작가는 수난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데 머물지만은 않았다. 예수의 머리 뒷편으로는 후광이 드리웠고, 오른편 얼굴은 금빛으로, 왼편 얼굴은 초록의 빛으로 눈부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화면 속에 문득 등장하는 이 찬란한 광채는 고난받은 그리스도의 패러독스다.

작가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지독한 고난 속에서도 숨겨질 수 없는 하나님 영광의 광채와 부활의 소망을 고백했다. 그래서 이 작품 '그리스도'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어리석어 보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낮은 곳의 작은 자에게로 향하는 그리스도의 한 없는 자비의 온기로 충만하다. 사순절을 지내는 이때,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 마음도 예수님이 계시는 그곳에 함께 머물기를 바라 본다.

신상현 목사 / 장로회신학대학교역사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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