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소멸, 한 영혼 성장 위해 준비할 시기"

[ Y칼럼 ] 황호연 청년 ④ : 교육의 겨울

황호연 청년
2022년 02월 23일(수) 10:12
모든 크고 중요한 일들은 서서히 이루어진다. 아니, 굳이 그런 큰일이 아니더라도 사과 열매나 포도 열매 하나가 맺히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지금 내게 열매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할 것이다. 먼저 꽃이 피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만개하고, 무르익어 열매가 맺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작은 오디 열매 하나조차도 하루아침에 맺히지 않는 법인데, 한 사람의 마음에 열매가 맺혀서 그 열매를 거두는 일이 어떻게 빠르고 쉬울 수 있을까? 설령 그 일이 쉽고 빨라질 것이라고 누군가 속삭일지라도, 나는 그런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다.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기다려야 함을 모르는 이 없다. 공들인다는 것은 정성을 쏟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이 절대적인 양분임을 우리는 모두 안다.

예전에 수복했던 머리숱이 조금씩 줄어들게 된다. 머리칼의 생명도 조금씩 가늘어진다. 머리를 쓸어넘겨도 몇 번이나 뒤로 넘겨야 했는데, 이제는 한두 번에 머리가 뒤로 넘어간다.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머리의 양도 줄어든다. 치아는 조금씩 틈이 생긴다. 칫솔질로는 감당이 안 되어 치실도 필요하고 급기야는 식사 후에는 이쑤시개까지 필요하다.

눈가의 피부도 마찬가지다. 얼굴 곳곳에 일던 피부 트러블도 하루면 금세 돌아오고, 세포 하나하나가 빈틈없이 속속들이 가득차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씩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가족들이 허리며 손목이며 아프다고 하는 것들을 보면 빈틈없는 몸의 구석구석에 엉성한 배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조금 덜 빽빽하게 오늘도 내 몸안에 빈 공간들이 생겨난다. 듬성해지고 헐거워지고 성글어지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조금씩 비워지고 넓어지는 것은 나이가 알려주는 소멸의 기쁨일 것이다.

겨울은 그런 소멸과 닮아 있다. 한 해 농사를 마치고 난 겨울 땅에서 지난날의 호흡을 느낄 수 있듯이, 너른 들판 소복이 쌓인 눈은 비로소 씨를 뿌리던 봄날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딱딱하게 얼어 있던 땅에 푸르른 녹음을 색칠하고 황금밭을 선물받고 나면 우리는 소멸의 의미를 알아가게 된다.

빽빽하게 가득차 있던 푸른 밭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비로소 가벼워질 때 그토록 중하게 여긴 완성이라는 단어를 내려놓게 된다. 2월의 들녘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새로운 일을 하기 위해 생각을 바닥에서부터 끌어 올리고 주워 담았던 1년의 시간을 거꾸로, 소멸의 계절에 위로 받는다. 나뭇잎 하나 남겨 놓지 않는 자연이 알려주는 겨울의 소멸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우린 2021년을 보냈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다. 우리가 지금의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 눌리지 않고 다음세대를 끊임없이 가르치고 사랑으로 지내왔기에 우린 성숙할 수 있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는 말씀처럼 치열한 경쟁의 시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우리의 시야가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의 성장을 기대하고 돕는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 때다. 시간의 선물인 열매처럼 전인적인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교육을 매일매일 펼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황호연 청년 / 충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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