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없다

[ 목양칼럼 ]

박기홍 목사
2022년 02월 23일(수) 08:28
'은퇴하면 바빠서 과로사(?)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유쾌하게 전화기 너머로 들려주신 퇴임을 앞둔 목사님과 통화를 했다. 전화를 끊고 그 말을 생각할 때 마다 피식 웃음이 난다. 설마 그럴 리가 있나? 목회를 마무리하는 은퇴 목사님의 유머가 한 나절이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죽음을 명랑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때로 생각지 못한 지인이나 가족들이 훌쩍 세상을 떠날 때 당황스러워 진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목도할 때 오랜 시간 마음을 잡지 못하고 슬픈 시간을 보내게 된다. 간혹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내고 상심한 부모들을 위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 장례식에서 떠난 자식을 보내면서 '잘가라 ○○야' 이 말을 머뭇하며 눈물이 범벅이 되어 통곡하는 것을 본적 있다. 살아 있을 때 잘해주고 떠나면 잘 보내야 한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살아 있을 때는 속 썩이고 죽으면 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떠나보내지 못해 애통하며 어쩔줄을 몰라 하는 것이다.

죽을 때 비로소 아는 것 세 가지 있다고 한다. 첫째, 사람은 한번은 꼭 죽는다. 둘째, 아무도 같이 가지 못한다. 셋째,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두 번은 없다'라는 시에 그런 글이 있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중간 생략)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우리는 한 번 이 세상에 왔다가 한 번 이 세상을 떠난다.

신학자 바르트(Karl Barth)는 우리의 시간은 '주어진 시간(given time)'이라고 시간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시간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게로 왔다가 떠나 버린다. 그 때 시간이 내 것이라고 여긴 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는 제한된 시간을 하나님께 받은 것이다. 그리고 육신의 종말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 진다. 반복되지 않는 시간을 유감없이 살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분투하는 것은 마지막 육신이 끝나는 시간이 왔을 때 영원한 시간 속에 참여하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달려간다. 우리의 목회도 단 한 번뿐인 일회적인 사건으로 영원 속으로 빨려간다. '있을 때 잘해'라는 평범한 말이 마지막 순간에는 아쉬움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 그 시간이 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부르심도 피할 수 없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믿음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고 우리의 한 번의 인생은 반복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세상을 떠난다. 가지고 가는 것 없다.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집착을 내려 놓는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좀 더 평화로울 것이다.



박기홍 목사 / 가재울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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