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 학교는’ 좀비에 맞선 학생들이 우리에게 던진 질문

[ 생생논평 ]

백광훈 원장
2022년 02월 11일(금) 14:36
'지금 우리 학교는'(이재규 감독, 2022) 이라는 넷플릭스 드라마가 화제입니다. 글로벌 OTT 순위집계에 따르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지난달부터 오랜 기간 TV쇼 부문에서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 91개국에서 시청률 톱 10에 들만큼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지금 우리 학교는'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된 학교에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함께 손잡고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입니다. 좀비 장르에 대한 엄청난 팬덤과, 최근 오징어 게임에 이은 이른바 K-콘텐츠에 대한 뜨거운 관심들이 '지금 우리 학교는'의 흥행을 이끄는 이유가 될 텐데요, '학교에 간 좀비'라는 소재의 기발함과 파격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좀비들의 리얼한 비주얼과 기괴한 움직임, 빠른 속도로 달려와 인간의 살을 뜯어먹는 잔인함이 부담이 되고, 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진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적인 묘사에 대해 불편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중요한 질문들을 던지기 때문일 겁니다.

이 드라마의 주된 소재가 된 좀비(Zombie)는 '살아 있는 시체'를 뜻합니다. 그 기원 자체가 부두교에서 기원한 '좀비'라는 주술적 존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좀비는 그 기원과 분리되어 대중들에게 소비되는 일종의 문화적 상상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년 전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했을 때 사람들은 코로나19가 사람 간 접촉으로 전염되면서 현실이 '좀비 영화' 같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영화적으로 보면 대게 좀비물은 대중의 무의식과 시대 분위를 드러내는 영화적 소재가 곧잘 쓰였습니다. 최근 좀비가 등장하는 콘텐츠들(부산행, 킹덤 시리즈 등)이 부쩍 많아지고 있는데요, 아마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혼돈스러운 정치사회적 현실과 초경쟁적인 경제 환경 속에서 짓눌려 살아가는 사람들을 표현함에 있어 좀비만큼 적절한 소재도 흔치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가디언지가 '지금, 우리 학교는'야말로 지구촌에 드리운 암울한 좀비 그림자를 보여주는 '실존주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다는 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좀비들로 인해 기능을 상실해버린 '지금 우리 학교는'의 허구적 현장은 현실 학교에 드리운 암울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데요,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학교라는 장소는 우리 자녀들이 함께 성장하고 배우며 자라는 희망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의 문제들이 그대로 투영되어 계층이 계급화되고 무한 경쟁과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학생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모습의 부조리와 폭력 속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곳입니다. 좀비 바이러스 자체도 학교 폭력의 산물로 표현되죠.

학교에서 시작한 좀비의 창궐은 학교를 넘어 효산시로 삽시간에 퍼져나갑니다. 사회에 만연한 폭력이 바이러스의 창궐과 맥을 함께 합니다. 지금부터는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는데요, 이 드라마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결국 거대한 좀비 무리들을 효산고에 모아놓고 학교를 폭파시킴으로 좀비 사태는 일단락됩니다. 이러한 극적인 설정은 지금의 학교와 교육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이 드라마엔 청소년들이 바라보는 기성세대에 대한 느낌을 담아내고 있는데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어른은 대게가 무능력한 존재들로 묘사가 됩니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회적 참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무책임한 기성세대와 사건들이 연상되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특히 MZ 세대가 지닌 양면적 고민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죽기 싫다, 죽이고 싶지 않다'가 이 드라마의 슬로건이죠. 입시수능부터 취업까지 무한경쟁시대를 살아가면서 경쟁은 싫은데, 사실 남들보다 잘나고 싶은 우월의 욕구를 이중적으로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도 합니다.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해야 하지만 경쟁이 싫으면서도 남들보단 잘나고 싶은 청년들의 풀지 못할 고민도 생각할 꺼리를 던져줍니다.

그래도 드라마는 끌고 가는 힘은 희망입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위기를 극복해가기 위해 용기와 지혜를 모아 대처하는 아이들의 모습들 무엇보다. 친구를 구하고, 가족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선택하는 아이들의 성숙한 모습에 도리어 이 시대의 어른들은 반성과 위로, 어떤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신앙인들과 우리 교회에도 적지 않은 생각거리들을 안겨줍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교육현실이 직면한 문제들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학폭으로 대표되는 청소년 부조리 현상을 좀비물을 통해 전 세계 시청자에게 고발하는 일종의 사회 고발적 창작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한 경쟁 속에서 신음하며 좀비가 되어 괴물로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의 현실과 미래를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의식이 필요하며, 우리의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보태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비췬 학교는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사회 속에서 만들어진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텐데요, 이 드라마에서 결국 위기에 처한 우리 사회가 문제를 풀어나가는 길은 직면한 문제들을 볼 수 있는 이들에 의해 시작될 수 있고, 기성세대들의 문화와 체제에 물들지 않고 저항하는 용기 있는 이들의 신념과 행동들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러한 휴머니즘적 희망의 지평 속에서 오늘의 그리스도인과 교회공동체의 신앙고백과 삶의 모습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를 묻고 있기도 합니다. 배금주의와 쾌락적 소비주의, 생존을 위한 무한경쟁과 개인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립되어 생명력을 잃고 좀비처럼 신음하는 현대인들에게 기독교는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할까요. 세상은 '함께'의 의미를 나누고, 공감하며, 기꺼이 희생하며, 섬기는 신앙인, 공공의 선을 추구하며, 하나님 나라에 실신하게 참여하는 교회공동체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서주기를 요청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던지는 질문들을 생각하면서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은' '지금 우리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자문해보고 대답해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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