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272

[ 주간논단 ]

장신근 교수
2022년 02월 15일(화) 08:10
며칠 전 프린스턴신학대학원 총장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동문들에게 발송된 그 메일의 내용은 신학교 설립에 공헌하고 초대 교회사 교수로 봉직했던 사무엘 밀러(1769-1850)를 기념하는 '밀러 채플'의 명칭을 이사회의 결의로 '세미너리 채플'로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밀러는 당시 개인적으로 흑인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고, 해방노예를 아프리카로 돌려보내는 운동을 했던 '미국식민협회'를 옹호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미국 장로교와 신학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었으나 노예제도 관련 과거 역사 청산 차원에서 채플의 이름을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아들도 자신이 졸업한 '존 위더스푼 중학교'가 최근 '프린스턴 중학교'로 이름이 변경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였고 장로교 목사이며 프린스턴대학교 총장이었던 위더스푼(1723-1794)도 흑인 노예를 소유한 인물이었다.

몇 해 전부터 미국의 대학가에서는 미국 역사상 최대 치욕이라 할 수 있는 흑인노예 제도에 대학이 연루되어 있었던 사실에 대한 반성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운동으로 더욱 힘을 얻고 있다. 이는 긴 세월이 흘렀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있는 흑인 노예제도의 유산 청산 운동이라 할 수 있다.

1789년 가톨릭의 예수회에 의해 설립된 조지타운 대학의 경우, 1838년 272명의 흑인 노예를 팔아서 위기에 처한 학교 재정에 사용하였다. 최근 학교의 어두운 역사를 알게 된 학생들은 참회의 일환으로 '#GU272'라는 운동을 전개하면서 학생회비 가운데 27.2달러를 노예 후손 학생들을 위한 기금으로 내기로 하였고, 학교도 이와 관련된 비영리 역사연구 단체를 설립하고, 화해를 위한 기금을 계속 마련하고 있다. 아이비리그를 포함한 56개의 대학은 연구모임을 결성하여 대학과 노예제도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운동을 통하여 과거 노예제도를 찬성하거나 개인적으로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대학 관련 인물들의 역사를 밝혀내고 이들을 기념하여 건립된 동상의 철거, 건물과 기관 이름의 변경, 더 나아가 흑인 노예 후손들에 대한 교수석좌 기금 마련, 장학금 지급 및 배상문제 까지도 다루고 있다. 실제로, 조지타운 대학은 당시 노예를 매매한 2명의 총장 이름을 건물에서 떼어내고, 1억 달러의 기금을 마련하여 인종화합 캠페인, 흑인 노예 후손들의 교육기금, 보상비 등으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여러 학교가 이러한 참회를 통한 화해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미국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운동을 보면서 여러 질문이 떠올랐다. 일제 강점기, 6·25 한국전쟁, 제주 4·3 사건, 군사독재, 광주 5·18 민주화운동 등을 통하여 생겨난 수많은 갈등과 반목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 왔는가? 과연 제대로 화해하고 마무리된 것이 있기나 한 것일까? 피해자와 가해자 가운데 누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 내민 손을 잡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과거와의 화해는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화해의 실천은 무엇인가?

이제 대통령 선거일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통합과 화해보다는 자신을 향한 한 표를 위하여 이념적,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세대별 갈등을 조장하는 후보들을 보면서 나라의 앞날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GU272를 내걸고 200년 전 모교에서 행해진 과오를 반성하면서 작은 화해의 발걸음을 시작한 학생들과, 참회를 위한 여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 대학들을 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화해의 사명을 다시 생각한다.



장신근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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