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이 갖는 의미

[ 시인의세상보기 ]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2년 02월 09일(수) 10:00
친한 선배와 오랜만에 약속을 했다. 약속장소는 3호선 백석역 교보문고. 나는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선배는 갑자기 일이 생겨 많이 늦는다고 했다. 느긋하게 서점에서 책을 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서점에서의 기다림이 좋았다. 어떤 우연은 가끔씩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책과 책 사이를 오가며 책들이 뽐내는 다양한 책의 얼굴을 구경했다. 대형서점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코로나 때문인지 바쁜 일상 때문인지 서점에 오는 일이 오랜만이었다. 읽고 쓰고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나도 도서관만 들락거렸다. 작은 책방은 자주 다녔지만 대형서점은 오랜만이었다. 그동안 직무유기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뽑아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다. 책에서 풍기는 특유의 종이냄새를 맡으며, 종이가 주는 질감을 손으로 느끼며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었다. 서점에서의 독서는 집중이 잘 된다. 한 문장씩 읽어가며 글에도 냄새와 촉감이 있다는 걸 느끼곤 한다.

예전에는 서점이 중요한 약속 장소였다. 광화문 교보문고, 지금은 없어진 종로서적은 매번 만나는 약속 장소였다. 약속시간에 좀 일찍 도착해도, 친구가 좀 늦게 도착해도 괜찮았다. 서점에서 책을 보면 되었으니까. 함께 서점에서 한두 시간씩 책을 읽다가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친구와 만나면 자연스럽게 책 얘기로 시작한다. 서점은 약속의 장소이자 문화 사랑방이며 최근 문화의 트렌드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장소였다.

요즘의 서점은 예전만 못하다. 고형렬 시인은 "마음만한 서점 한쪽엔/생의 비밀들을 숨긴 책들이/슬픈 책들이, 있었다/다시 드르륵, 문을 열고/단장된 책들이 잘 꽂혀 있는/그 자리에 한참, 서고 싶다/그대에게 소식을 전하고/새로운 마음을 얻으려고"(사라진 서점)이라고 했다. 서점은 그리운 이에게 소식을 전하고 삶의 새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장소이다. 또한 생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갖는 큰 의미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동네의 작은 책방들이 많이 생겨났다. 책방은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책방마다 특색 있는 콘셉트를 가지고 운영한다. 시집, 에세이, 아동문학, 그림책, 인문철학, 만화, 그래픽노블, 해외서적 등등 콘셉트를 가진 책방들이 흥미로운 큐레이션으로 독자들과 만난다. 시인이나 작가나 연예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책방들도 많이 생겼다. 각 지역의 책방을 찾아가는 책방투어도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코로나로 집콕을 하니 독서량이 늘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발표한 2021년 전국 공공도서관 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공공도서관의 하루 평균 대출 권수는 62만 9553권으로, 전년 대비 38% 증가했다. 실제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것보다 빌려서 보는 양이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가 길어지면서 독서량도 서서히 줄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 14일 발표한 가장 최근의 통계를 보자.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종이책, 전자책, 소리책(오디오북)을 합한 성인의 평균 종합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에 비해 3권 줄었다. 종합 독서율은 47.5%로, 2019년에 비해 8.2%포인트 감소했다고 전한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독서는 영상매체를 보는 것에 비해 더 큰 노력과 시간이 따른다. 정신적인 노고도 필요하다. 우리의 뇌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사고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에게 큰 자산으로 남는다. 독서는 그 중요성에 비해 사람마다 체감하는 방식이 개별적이다.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도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사람과 늘 책을 손에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비교할 수 없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어떤 의미로 남는가이다. 그 의미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독서이며, 최후에 인간은 그 의미로 인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말하자면 서점이나 책방은 우리에게 존재의 의미를 줄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주 들락거려야 하는 곳이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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