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먼저'의 자세

[ 성경과재물 ] 5. 드림과 나눔

이창규 장로
2022년 01월 27일(목) 08:15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한 마리의 양을 위해 99마리가 희생하는 구조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정부의 분배나 복지정책에도 한계가 있다. 이때 나누고 드리는 하나님의 원리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나눔을 통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꼭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힘든 여건에서도 이웃에게 온정을 손길을 보내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마음이 넉넉해진다.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의 핵심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재물을 드리고 나누는 그것은 주님의 새 계명을 실천하는 적극적 행동이다. 이 사랑의 표현에 대해 성경은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네 보물이 있다"(눅12:34)라고 말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드림과 나눔을 통해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신다. 그러므로 물질은 드리지 않고 마음만 드리겠다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려는 행위이다.

성경에서 드림과 나눔의 원리는 '주라'이다. 여기에는 조건이 없으며 예외인 사람도 없다. 가난하기 때문에 줄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조건 없이 주어야 한다. 주라는 것은 명령이고 이 명령을 이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하신다. 주는 자는 그가 준 것보다 더 많이 받는다 "곧 후히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눅6:38)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이 꿈꾸시는 사회는 굶주림이 없고 헐벗고 소외당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드림과 나눔이 어려운 것은 소유물을 내 것으로 주장하고 싶은 유혹 때문이다. 그때 반드시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나눔은 에덴에서 시작되었다. 에덴에서 나온 물을 네 근원을 통해 흘려보냈기 때문에 모든 생물이 살 수 있었다. 나눔은 창조의 질서를 따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다.

드림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십일조이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행위이며 드림의 결승점이 아니라 출발점인데 여전히 출발하는데 어려워 보인다. 십일조는 돈의 문제나 율법의 문제가 아니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이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느냐의 문제이며 믿음의 표현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드림과 나눔의 자세로는 언제나 "하나님 먼저"이다. 이는 최고의 것과 첫 번째 것을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다. 드림과 나눔의 축복으로 하늘에 쌓이고 풍요(마6:21)함을 누린다.

우리는 이 땅을 떠날 때 재물을 가지고 갈 수는 없지만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아둘 수는 있다.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벌거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는 것이 하늘 창고에 보물을 쌓는 방법이다. 시편에서는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는 치유와 복을 주신다(시41:1-3)고 약속을 하신다. 그런데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자를 돕지 못하는 것은 맘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 그리고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부자와 부자 청년의 잘못은 나누지 않은 데 있다.

모아도 부자가 되기 어려운 세상에 나눔으로 부요하게 된다는 것은 허황되고 모순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11:24~25)고 이야기 하고 있다. 세상의 방법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지만 이것이 감춰 진 보화이고 하나님의 비밀이다. 결론적으로 드리고 나누는 법칙은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 개념이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재정이며 이 법칙을 따르면 실패가 없다.

이창규 장로 / 총회연금재단 사무국장·송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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