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것이 축복이다

[ 가정예배 ] 2022년 1월 26일 드리는 가정예배

이근형 목사
2022년 01월 26일(수) 00:10
이근형 목사
▶본문 : 요한복음 5장 24~29절

▶찬송 : 552장



곧 '설날'이다. 설날의 어원에는 철학적인 의미가 있다. 충분히 익지 않은 상태를 '설었다'고 하는데 해가 바뀌어도 사람이 익어가지 못함을 느껴 설움에 잠긴다는데서 온 단어가 설날이다. 새해가 되어 설렘으로 시작한 시간이 이제 음력의 새해가 되었다. 그 시간의 굴레 속에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기쁨인가.

오늘 본문은 생명에 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에 천사가 내려와 파문을 일으켜줄 때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38년 된 병자를 치유하신 후에 하신 말씀이다. 그날은 안식일이었기에 반대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으셨다. 안식일 법에 의하면 안식일에 누군가를 치료하는 행위도 안 되고, 치료를 받은 사람이라 해도 일정 거리를 걸어가는 노동도 해서는 안 되는 율법을 어긴 데다가,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 호칭했으니 율법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난할 호재를 만난 것이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단순하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 여기서 예수님이 의도하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란 생명을 살리는 일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요, 보전자요, 관리자요, 섭리자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음이나 다름없는 병자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셨다. 그런데 그 일이 안식일에 행해졌다 해서 비난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생명을 멸시한 사람들이 아닌가.

예수님은 생명을 위해 오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려 사람처럼 사셨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려 말씀하셨다. 심지어 무덤 속에 있는 자들까지 그 음성을 듣고 누군가는 생명으로 부활하고 누군가는 심판받기 위해 부활한다.

이 소중한 생명을 어떻게 누리며 살 것인가?

우선 생명 자체가 축복이라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 생명을 누리고 있다는 실존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가! 온 우주는 내가 있으므로 의미가 된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살아있음에 감격하며 하루를 감사함으로 시작하는가? 최근에 유행하는 '은혜'라는 제목의 찬양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살아있음 자체를 은혜로 여길 때 하루하루가 축복이다. 또한 내가 누리는 삶이 남에게도 복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고민이 따른다.

예수님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다른 사람들의 생명에 얼마나 폐가 되는지 짐작이나 했을까? 내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이의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야말로 남에게도 축복이 되는 첩경이다. 내가 누리는 생명으로 나를 이 세상에 존재케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병자를 치유한 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셨다. 우리 삶의 궁극적 목적이 그래야 한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시편 150편의 맨 마지막 한 소절이다.



오늘의기도

하나님이 주신 나의 생명을 늘 감격으로 누리며 누군가에게 축복이 되게 하시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근형 목사/포도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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