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어로 성경을 번역한 최초의 인물, 피에르 발도"

[ 선교여성과 교회 ] 종교개혁의 유산,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③

박경수 교수
2022년 01월 12일(수) 15:42
지난해 코로나 영향으로 온라인 상에서 진행된 계속교육원 제20회 1일 수련회. / 한국기독공보 DB
제네바에 있는 종교개혁자 기념조형물을 방문하면 제네바의 종교개혁자들 앞에 루터와 츠빙글리 기념비가 서 있다. 이것은 루터와 츠빙글리의 영향 아래 제네바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루터 기념비 옆면을 보면 세 사람의 이름이 기록돼 있다. 피에르 발도, 존 위클리프, 얀 후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것은 이들 세 사람이 루터에게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은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이전 중세 시대에 교회개혁을 주창했던 선구자들이었다.

12세기 프랑스 리옹 출신의 상인이었던 발도는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하셨던 말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랐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고, 이들은 "리옹의 가난한 자들" 혹은 "발도파"라고 불리게 됐다. 무엇보다 발도는 현대어로 성경을 번역한 최초의 인물이다. 당시에는 라틴어 성경만 있어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는 평범한 사람들도 읽을 수 있도록 프랑스어 방언으로 신약성경을 번역했다. 더욱이 발도는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도,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신도도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발도의 주장은 로마교회에게는 매우 중대한 도발이었다. 결국 1215년 4차 라테란교회회의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발도파는 리옹에서 쫓겨나 이탈리아의 피에몬테와 프랑스의 뤼베롱 지역으로 피신했다. 발도가 당시의 신학과 제도에 순응했더라면 아마도 그의 삶은 순탄했을 것이고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보다 더 존경받는 성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성경에 기초하여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를 말하고 행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기꺼이 좁고 험한 길을 걸었다. 그를 따른 발도파도 800년의 오랜 세월 모진 박해를 받았으나 지금까지 살아남아 세계 각지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충실히 지켜가고 있다.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굳게 지켰던 발도야말로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의 가장 앞선 선구자이다.



박경수 교수 / 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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