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事實)은 이야기로 존재한다

[ 인문학산책 ] 43

김선욱 교수
2022년 01월 11일(화) 07:15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우리는 보통 세계는 사물로 구성되어 있다고 답할 것이다. 내 방에 여러 사물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세상도 사물들로 가득 차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서의 반열에 들어가는 '논리 철학 논고'라는 책에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세계는 사물의 총체가 아니라 사태의 총체이다"라고 말했다. '사태'란 일어나는 일, 혹은 사실을 말한다.

세계를 인식할 때 우리는 사물을 중심으로 인식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내 앞에 책 한 권이 있다고 하자. 나의 인식은 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실은 그 책은 탁자 위에 놓여 형광등 조명을 받아 내게 책으로 인식이 된다. 나의 의식은 책에만 집중하지만 세상은 책을 둘러싼 전체로 존재한다. 그 책은 내 눈을 채우고 있는 사실 전체의 일부일 뿐이다.

또 주위 사람들에게 그 책을 잠시 본 뒤 기억한 것을 말하라고 요청했다고 하자. 어떤 이는 저자의 이름을, 어떤 이는 제목의 글자체를, 어떤 이는 책 표지 그림을 기억할 것이다. 어떤 이는 놀랍게도 표지에 있는 글자 수를 말할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그것은 우리의 인식이 의식 속에 자리 잡은 특정 관심사에 이끌리기 때문이다. 이를 훗설이라는 철학자는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누구의 의식에나 어떤 끌림이 작용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떤 사실에 대해 타인에게 알릴 때 언어를 사용한다. 이때 우리는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구조를 만들고, 만든 문장의 선후를 결정한 뒤 말한다. 이처럼 타인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은, 나의 언어와 문법으로 형성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에는 나의 의식의 지향성이 개입된 선택과 판단이 포함된다. 이처럼 사실(事實)은 그것을 전하는 전달자의 이야기로 존재한다.

우리가 접하는 신문 기사도 사실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이다. 예컨대, 교통사고 기사를 보면 사고 현장 하나만이 아니라 사고 전과 후가 모두 연결되어 하나의 사건을 이룬다. 그래서 사고 전의 음주나, 사고 후의 뺑소니, 또 그 운전을 한 사람의 신분 등이 얽혀 이야기가 형성된다. 이 과정에서 기사를 쓴 이의 관점과 가치, 그리고 경우에 따라 신문사의 입장이 개입한다. 신문 기사라는 이야기는 결코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야기의 참과 거짓은 어떻게 판별되는가? 전통적으로 말해 온 진리 기준에 따르면, 이야기는 사실과 부합해야 하고, 또 앞뒤가 맞아야 한다. 사실에 대한 객관적 진술은 이야기 전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태의 모든 측면을 다 알지 못한다면 이야기가 인과관계에 따라 논리적으로 구성되기가 어렵다. 이때가 이야기의 저자가 개입하는 순간이다. 그 틈을 자신의 신념으로 채우거나 의도적으로 사실의 관계를 뒤섞을 때 거짓이 작동한다.

거짓말은 듣는 이가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 지에 맞추어 만들어진다. 거짓말은 합리적으로 구성되어야 설득력이 있다.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거짓말이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이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쏟아지는 수많은 언론 기사들도 모두 이야기들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정치의 시즌에 뉴스는 더더욱 기자와 언론사의 선택과 가치가 개입된 결과이다. 이때 우리는 그 이야기가 전달하는 객관적 사실들을 엄격히 구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사실을 왜곡하는 가짜 뉴스는 올바른 판단의 적이다. 가짜 뉴스는 십계명에서 금한 거짓 증거와 같은 것이다. 시민의 정치적 판단은 올바른 사실에 기초할 때 건전해진다. 방송에서 말한다고 해서 또 글로 쓰였다고 해서 모두 진실로 믿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듣는 모든 이야기를 우리가 철저하게 검증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사람들이 진실한 자들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듣기 좋은 소식에만 몰두하면 쉽게 속게 된다. 내가 잘못되지 않으려면, 듣기 싫은 말, 외면하고 싶은 정보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