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본래적 목적은 소통이다(상)

[ 인문학산책 ] 39

김선욱 교수
2021년 12월 14일(화) 10:59
위르겐 하버마스.
우리가 일상에서 성공적 대화를 수행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현대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성공적 대화를 위해 대화 쌍방이 거쳐야 하는 과정을 네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 대화에서 이루어지는 말이 어법에 제대로 맞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상대의 말이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면 대화는 성공할 수 없다. 대화하는 말은 그 단어의 의미나 문장 구성이 명확해야 한다. 애매한 표현이나, 둘러대는 말들에 대해서도 그 정확한 의미를 요청하고 따지는 과정이 우선으로 요구된다.

둘째, 대화하는 말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서울역에 가려면 집 밖으로 나가 641번 버스를 타야 한다"는 말이 타당하려면 집 밖에 641번 버스가 있어야 하며, 또 641번 버스가 서울역으로 가야 한다. 말이 객관적 사실의 세계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은 성공적 대화의 기본 조건이다.

셋째, 말이 사실에 부합하더라도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 적절해야 한다. 약혼식에서 마이크를 들고 약혼하는 사람의 과거 이성 친구와의 연애 내용을 재미있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도 말이다. 우리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지켜야 할 예의, 매너, 에티켓, 도덕, 윤리, 법 등이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사실의 문제는 아니지만 잘 알고 지켜야 할 것들이다. 이런 것들로 구성된 세계를 사회적 세계라고 한다. 사회적 세계는 비록 항상 변화 가운데 있기는 해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를 규범으로 제약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에 부합하지 않는 말은 사실에 부합한다 해도 대화의 지속을 불가능하게 한다.

넷째, 대화 상대의 말에 어떤 나쁜 숨은 의도가 있는지 의심하게 될 수 있다. 비록 그것이 사실과 규범에 부합한다 해도 말이다. 의도라는 것은 짐작할 수는 있어도 정확히 알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내면세계에 속하며,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세계이다. 그런데 그 의도에 심각한 의심이 들 때는 그 말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예를 통해 종합해보자. 어떤 교수가 세미나를 하면서 강의를 듣는 한 학생에게 "미안하지만, 지금 목이 마르니 밖에 나가서 물 한 잔 가져다 주세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어법상 문제는 없다. 그런데, 이 말에 근거해 대화와 행동이 이어지려면 밖에서 물을 가져올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또 교수가 학생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적절해야 한다. 교수는 그런 일을 학생에게 시켜도 되는가? 교수 스스로 나가서 할 수는 없는가? 이 말은 부탁인가, 명령인가? 등의 의문에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도 아무 문제가 없더라도, 학생이 교수에 대해 자기를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해서 자기에 관해 험담하리라고 의심할만하다면, 학생은 교수의 말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대화에서 문제를 느끼는 것은 이상과 같은 네 가지 부분에 대한 의심이나 의문을 갖게 될 경우이다. 이때 우리는 해당하는 문제를 따로 떼 내어 문제를 제기하고 타당성을 따져본다. 밖에 나가면 물을 가지고 올 수 있는지, 또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말이다. 의도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여기에는 신뢰가 필요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대화는 거기서 중단된다. 문제가 해결되면 대화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이런 점들을 따져 묻고 싶으나 겁이 나서 묻지 못할 수 있다. 성적이 염려되어 교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은 평등한 대화가 가능한 상황이 아니다. 개인적 관계에서 그것은 위계에 의한 권력이 작용하는 경우이며, 정치적 맥락에서 그것은 권위주의적 체제가 작동하는 경우이다. 이런 문제의 상황에서 우선 필요한 것은 제약 없는 대화가 가능한 상황, 얼마든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말을 통해 사회적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사회를 목표로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실에 맞고, 적절한 규범에 부합하며, 의도를 신뢰할 수 있는 말들이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서부터 유통되어야 한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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