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정치적 책임

[ 주간논단 ]

김명용 목사
2021년 11월 30일(화) 08:25
우리 교단의 21세기 신앙고백서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하는 교회의 책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아울러 정의, 평화, 창조의 보전이라는 하나님 나라를 세움과 관련된 중요한 과제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우리 교단에 속해 있는 교회들은 이 과제를 수행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정치적 책임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하는 교회의 과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한 동안 교회의 정치적 중립론이 한국 교회를 강하게 휩쓸었으나, 오늘에 와서는 과거의 신학적 오류로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다. 진보적인 교회는 말할 것도 없고, 보수적 교회에서도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강하게 강조하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이다. 반혁명당을 이끌며 네덜란드의 수상까지 지낸 카이퍼(A. Kuyper)의 신학적 가르침을 보수적 교회에서도 강조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교회가 정치적 책임을 감당하느냐에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상황은 정치적 책임을 바르게 감당하는데 상당 부분 실패하고 있다. 여당이나 야당의 이중대 같은 모습을 교회의 지도자들이 많이 연출하고 있어서 보는 이들의 실망감이 높아가고 있다. 교회가 특정 정치세력의 이중대로 전락하는 것은 교회의 정치적 책임의 비참한 실패이다.

하나님 나라 신학과 교회의 정치적 책임을 강조했고, 독일 사회민주당의 중요한 지도자였던 블룸하르트(Ch. Blumhardt)는 사회민주당이 가졌던 죄악성과 집권을 위한 폭력성을 깊이 목도하고, 만년에 사회민주당 의원직을 버리고 교회의 길을 걸었다. 블룸하르트의 신학적 가르침에 깊이 영향을 받아 20세기 최고의 신학 교부가 된 바르트(K. Barth)는 교회가 기독교 민주당을 만드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그 이유는 정당은 집권에 대한 욕망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죄악의 길로 갈 가능성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었다.

교회는 언덕 위의 마을처럼 세상의 국가나 정치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곳이다. 교회의 빛은 여당에게도, 야당에게도 가야 할 길을 인도하는 빛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유비들을 세상에 알리는 곳이고, 이를 구현할 일꾼들을 길러내는 곳이고, 국가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교회의 기도는 국가를 위한 가장 큰 봉사이다.

해방신학의 정치적 당파성에 대한 가르침이 한국교회에 깊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가르침은 교회가 특정 정치세력과의 결탁과 일치(일반적으로 가난한 자를 대변하는 정당과의 일치)를 정당화시킨다. 그런데 이 당파성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깊은 우려가 가톨릭 교황청으로부터 나왔다. 교황청에 의하면 교회의 길은 공동의 선을 위한 길이지 특정 정치세력과 무조건적 연대가 아니다. 이유는 가진 자나 가난한 자 모두에게 깊은 죄악이 있고 바르지 않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해방신학의 정치적 당파성에 대한 가르침은 예외적 정황과 깊이 결부된 가르침이다. 불의가 지극히 깊고 가난한 자들의 한이 하늘을 찌를 때, 교회의 길은 가난한 자들과 연대하는 당파적 길일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만델라(N. Mandela)를 교회가 높여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교회의 당파성에 대한 가르침은 너무 자주, 또한 너무 많이 오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권에 눈이 먼 정치세력과 결탁하는 것을 당파성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교회의 길은 교황청이 언급한 것처럼 공동의 선을 찾는 길이다. 그리고 당파성 역시 공동의 선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것은 두 세력이 원수 되어 계속 싸우는 길이 아니고, 두 세력 모두 하나님의 뜻을 찾고, 바른 길 위에서 공동의 선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김명용 목사 / 장신대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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