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 인문학산책 ] 33

김선욱 교수
2021년 10월 29일(금) 18:05
윤리학이나 정치철학은 크게 두 줄기로 구분된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는 공동체주의적 입장으로 근대에는 헤겔로 이어지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에게로 연결된다. 다른 하나는 칸트를 시작점으로 해서 현대에 존 롤스로 이어지는 자유주의적 입장이다. 전자는 삶의 현장을 중시하며 후자는 이성을 통해 현실을 이끌어가는 원리를 중요시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사람이 어떻게 훌륭한 인간이 되는지 알려준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은 삶을 이끌어갈 근본실천원리를 어떻게 발견하는지 알려준다. 후자가 깨달음을 주는 철학이라면 전자는 깨달음을 어떻게 삶으로 옮겨낼 것인지 알려주는 철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란 덕을 갖춘 사람이다.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표현으로 하면 그는 덕과 성품을 갖춘 사람이다. 덕을 갖추려면 부단한 실천이 있어야 한다. "한 마리의 제비가 봄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이솝의 이야기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말이다.

다음의 말을 생각해 보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지만, 진실을 말하는 이가 곧 진실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진실한 사람은 늘 진실을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진실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거짓이 없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진실한 사람이지는 않다. 거짓말쟁이도 평상시에는 늘 진실을 말한다. 다만 남을 속이려 들 때 거짓을 말할 뿐이다. 평소에는 거짓말쟁이가 더 진실해 보인다. 거짓말하려는 자는 남의 신뢰를 얻어야 하므로 진실한 말을 통해 자신을 위장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사람이란 진실이라는 덕을 갖춘 사람이다. 그의 성품이 진실한 사람이다. 진실이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갖는다고 해서 그 순간에 그가 곧바로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랜 시간의 삶을 살면서 진실을 살아내는 사람, 그래서 진실을 체득한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실 외에도 절제, 용기, 온화함, 수치심, 의로운 분노 등이 덕에 해당한다고 했다. 덕의 특징은 중용에 있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가 중용이다. 중용은 과녁에 적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치심을 안다는 것은 지나친 부끄러움과 파렴치의 중용이다. 부끄러워할 일에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할 일에는 당당해야 한다.

부끄러워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어떻게 구분하는가? 그것은 분별력의 문제다. 분별력은 지식을 통해 갖추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전을 달달 외운다고 훌륭한 판검사가 되지는 않는다. 분별력을 갖추어야 올바로 법을 다루는 사람이 된다. 분별력은 현실을 면밀히 살펴보고 깊이 생각해서 제대로 따져봄으로써 형성된다.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겠지만, 계속 시도해 봄으로써만 마침내 분별력이라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 어른이다. 분별력을 갖고 공동체의 잘못을 꾸짖으며 바른길로 이끌어가는 이가 어른이다. 하우어워즈는 어린 사람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게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일흔여섯이지만 내가 어른이 되었는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아. 하지만 바른 성품의 소유자는 적어도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가 된다는 의미 아닐까 싶다." ('덕과 성품' 202쪽).

베드로는 우리에게 "믿음에 덕을 더하라"(벧후 1:6)고 말한다. 믿음에 덕을 갖춘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 여하튼 사람들은 덕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믿음을 측정하기는 어려우나 덕은 삶 가운데 쉽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김선욱 교수 / 숭실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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