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받으며 떠나는 기독교인 '무티(엄마)' 총리 메르켈

16년 재임 후 퇴임 앞둔 신앙인 앙겔라 메르켈에 대한 관심 높아져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21년 10월 22일(금) 17:33
메르켈 총리의 퇴임을 앞두고 구동독 지역 주간지인 주퍼일루(SUPERillu)가 펴낸 특집호.
'무티(Mutti·엄마) 리더십'으로 독일 국민들의 사랑을 받던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독일 총리가 16년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목사의 딸이자 신앙인으로서 그녀의 성장배경은 물론, 말 보다는 행동으로 보였던 그녀의 신앙적 행보에 많은 크리스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한국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16년의 재임을 마치고 성공적으로 퇴임하는 메르켈 총리에 대한 회고와 평가가 국내에서도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05년 독일의 첫 여성이자 동독 출신으로 총리가 된 메르켈 총리. 2009년부터 2017년까지 4차례 내리 총선에서 승리하며 16년간 재임한 후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이제 퇴임을 앞둔 시점에도 75%에 이르는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그녀에 대해 전세계는 EU의 대들보로서 독일을 유럽의 중심국가로 만들고, 과거 나치 만행에 대해 끝없이 사과하며, 10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이는 모습 속에서 그 어느 지도자에게서 보다 기독교인의 향기를 느끼고 있다.


#목사의 딸로 동독에서 자란 어린 시절

앙겔라 총리는 1954년 서독의 함부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인 호르스트 카스너와 라틴어 교사인 헤어린트 카스너 사이에서 삼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서독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생후 6주만에 아버지가 동독 지역의 루터교회 청년부 담당목사로 부름을 받아 1957년 동베를린 근처 우커마르크 지역 도시 템플린 외곽에 있는 발트호프 농장에 정착했다. 당시 약 270만 명의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탈출한 시기에 그의 가족은 거꾸로 동독행을 택한 것. 아버지가 1957년부터 템플린의 목회자 교육기관이었던 설교 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 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학창시절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청년 조직인 '자유청년동맹'에 가입해 활동한 경력이 있지만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응시할 기회를 얻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 경험이 그녀의 신앙고백을 공식석상에서 표현하지 않고 내면화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 말보다는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메르켈은 정치 현장 속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드러내지는 않지만 기독교의 가치를 행동으로 구현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드물게 그녀는 자신의 신앙에 대해 발언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04년 기독민주당 개신교 노동자위원회 총회에서 그녀는 "저는 찬양의 목마름을 간절하게 느끼고 있다. 찬양을 통하여 잔잔한 신앙의 향기를 흡입한다"라고 발언한 적이 있으며, 2005년 독일교회의 날에는 "우리 독일 사회 내의 기독교인들에게 사회적 정치적 책임에 대한 윤리적 의식을 각성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가 살아 있는 기독교 신앙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라며 주일예배 참석을 하지 않는 기독교인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은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전 13:13)"고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인 앙겔라 메르켈(한들출판사)'의 저자 폴커 레징은 "메르켈 총리는 정치 현장 속에서 스스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말없이 기독교의 숭고한 가치를 행동으로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라며, "목사인 아버지를 통하여 독일의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 유산을 물려 받은 동독 출신 여성 물리학자 메르켈의 삶의 이력을 유심히 관찰한다면 '기독교인 여성 총리'라는 이름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도주의 실천한 지도자 평가

그녀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1986년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정 민주화운동 단체인 '민주개벽(DA)'에 가입해 언론 홍보담당관으로 활동했으며, 1990년 기독민주당에 입당, 12월 2일 통일 독일 총선거에 뤼겐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그 이후 여성청소년부장관, 환경부장관을 거쳐 2005년 11월 22일 연방의회에서 최초의 여성 총리로 선출됐다.

옳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말을 뒤집고 사과하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으며, 실용적인 노선을 펼쳐온 그녀를 독일인들은 '무티 리더십의 정치인'으로 불렀다. 그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0~2011년, 2015년 유럽 부채위기, 2015년 유럽 난민위기 등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스 등의 경제위기로 유럽연합(EU)이 붕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최전선에서 이를 막아냈으며, 코로나19 위기를 맞이해서도 EU 내 코로나19 백신 공동구매·조달을 성사시키는 등 EU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그녀는 보수 성향의 기독교민주당 출신이지만 색깔이 다른 정치세력과 연정을 구성해 원전 폐지, 모병제, 탈원전 등 진보적 이슈를 수용했으며, 시리아 난민 100만 명을 받아들이며 인도주의를 실천했던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재임 중 단 한건의 비리나 부패 스캔들이 없었으며, 베를린 월세 아파트에 머물면서 퇴근 후 직접 쇼핑 카트를 끌고 장을 보던 소박하지만 위대한 정치인의 퇴장에 독일인들뿐 아니라 전세계인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표현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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