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경험도 인생의 자양분이다

[ 4인4색 ]

장도준 장로
2021년 10월 26일(화) 16:01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시기에도 배울 것이 있다. 특별히 군대라는 조직에서 많은 것을 배운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의 남자라면 군대를 갖다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군대 이야기를 하면 대개는 포장해서 과도하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 기억이 얼마나 강렬한 지 대부분 군에 다녀온 사람들은 늦은 나이에도 군번을 외우고 있다. 필자도 아직도 12로 시작되는 군번을 외우고 있다. 소위 말하는 논산 군번이다. 그리고 약 3년의 복무를 마치고 제대 후에도 몇 번이나 꿈 속에서 서류가 잘못 되었다고 다시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악몽을 꾼 기억도 있다. 대다수의 남자들이 힘들고 어렵게 군 복무를 마친 그 옛날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한참이나 젊은 시절에 경험한 일들이 평생의 교육이 되기도 하고, 버릇이 되어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도 그 옛날에 군대를 가서 많은 것을 느끼고 고치고 배우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 중에 라면 사건이 있다. 부대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10명 내외가 파견을 나가서 생활을 하던 곳에서의 이야기이다. 식사당번을 하게 되었는데 밥도 잘 하고 반찬도 잘 하는 등 여하튼 음식 솜씨가 좋아서 장교 식당에 차출을 당할뻔한 꽤나 괜찮은 취사병이었다(물론 주특기가 아니라 10명 중에서 가장 늦은 군번이라서 차출되어서 하게 된 것이다.).

당시에는 토요일마다 라면 한 봉지와 달걀이 2개씩 나와서 조리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 라면을 끓였던 터라 실수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 라면봉지에 조리법도 있는데 읽지 않고 라면을 끓였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물을 적당히 솥에 붓고 라면을 넣고 달걀도 넣고 석유난로에 불을 붙였다.

고참들이 식사 시간이 되어서 내려왔는데 솥뚜겅을 열었더니 난리가 났다. 결론은 그때까지도 남아 있던 '줄빳따'까지 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고참 중에 퉁퉁 부은 라면을 먹는 고참도 있고 음식을 던지고 난리를 치는 고참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혼이 난 후 나는 음식을 차려 놓고 아무리 맛이 없고 잘못 조리한 음식을 대하여도 투정을 부리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들이 일부러 그렇게 하지는 않을테니까 맛 없는 것도 참고 먹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 음식을 가지고 타박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그 생각도 나고 '한 끼 먹는 음식인데' 하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우리의 삶도 이렇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이 때의 경험을 나에게 도움을 주는 계기로 삼았다. 아무리 어렵고 의미 없는 것 같은 삶 속에서도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가지고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습관을 털어 버릴 수 있었던 시간을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어려운 시간 속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배우게 하는 걸까? 혼자 살아가는 것이 더 평안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비대면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는 지금 질병을 핑계로 삼고 우리의 예배를 나에게 편한 방법으로 드리는 것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본다. 더 무릎을 꿇고 조용히 나아가는 길을 배워야 하는 시간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70년의 포로 생활 속에서 예루살렘 성전을 사모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스라엘 민족들처럼 그들은 어려움 중에서 성전을 건축한 것처럼 지금 우리가 사모하여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일제 치하에서 조국을 버리는 것이 더 편했던 일상의 삶 속에서도 독립을 꿈꾸었던 많은 지사들처럼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왕에게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우기면서 결의를 했던 일 속에서 그들은 아마도 어둠이 걷히리라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둠을 탓하기만 하지 말고 지혜를 가지고 지금 우리의 심령이 회복 되어지며 오히려 주를 향하는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는 기회로 삼으며 나아가야 한다. 지금의 암울한 시간은 언제가는 지나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주의 말씀을 묵상하며 더 가까이 나아가는 신앙인으로 갖추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먼 훗날 오늘의 어려운 시간이 나에게는 더 믿음 속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되었다는 고백의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2:3)"



장도준 장로 / 춘천성광교회·강원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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