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리나무 아래에서 단을 쌓다

[ 성지의식물 ] 이강근 목사 32. 상수리나무

이강근 목사
2021년 09월 21일(화) 08:12
고목이 된 상수리나무.
상수리나무의 몸통.
상수리나무는 도토리나무. 성지의 상수리나무 도토리는 크다.
광야에 싯딤나무가 있다면 팔레스타인 산야에는 상수리나무가 있다. 갈멜산과 골란고원 그리고 일부 사마리아 산지를 뒤덮은 가장 흔한 나무이다. 나무가 선곳은 높은 곳이어서 탁 트인 전망이 있고 바람이 부는 쉼터가 된다. 상수리나무에 앉아 있으면 그냥 생각이 깊어지고 뭔가 묵상이 된다.

성지의 곳곳에는 20~30미터까지 자란 수백 년 된 상수리나무들이 있다. 짙은 검붉은 색을 띤 상수리나무의 몸통은 근육처럼 울퉁불퉁하고 나물 결에서 깊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토종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상수리나무를 신성시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이 세겜에서도 헤브론에서도 첫 단을 쌓은 곳이 상수리나무 아래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창12:6~7).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창13:18).

상수리나무는 생명력이 대단하다. 성지를 답사하다보면 아주 오래된 성읍의 유적지에는 고목이 된 상수리나무가 많다. 마을의 건물들이 흔적 없이 사라져도 오래된 고목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상수리나무 가에는 무덤들이 많다. 그만큼 오래사는 나무요 다른 나무들은 없어져도 상수리나무만큼은 살아있기에 몇 백년이 지나도 무덤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상수리나무 아래 묘지를 만든 풍습은 놀랍게도 창세기까지 거슬러 올라단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었을 때 그를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했고, 사울이 죽었을 때도 요단 건너 길르앗 지역의 상수리나무 아래에 장사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창35:8). "용사들이 다 일어나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대상10:12).

5천 년 되었다는 헤브론 상수리나무교회의 상수리나무.
현재 이스라엘 지도책에는 '알론'이란 상수리나무 이름의 위치표가 많다. 상수리나무를 히브리어로 '알론'이라 한다. 우리의 도토리나무다. 상수리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면 이 또한 상수리수풀이라고 표시된다. 상수리나무만 표시된다. 베들레헴과 헤브론 사이의 '알론쉐봇', 세겜 인근의 '알론모레' 상수리나무 고목이 있는 곳이다. 상수리나무로 인해 알론이란 이름을 붙여 지역이름이나 마을 이름이 된다.

상수리나무와 가장 관계 있는 지역은 헤브론이다. 헤브론에서 아브람이 천사를 맞이한 곳이 상수리나무 들에 있는 장막이었다. 이후 헤브론은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아내 사라가 노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란 약속을 받았다는 역사로 인해 상수리나무는 헤브론의 상징이요 헤브론의 상수리나무는 환대의 상징이다.

중세 이후 성지에서 발간된 고지도를 보면 성지의 각 도시를 표시한 상징 중 헤브론의 상징은 상수리나무다. 헤브론을 찾은 순례자들은 기념으로 상수리나무 가지를 잘라갔다고 한다. 특히 유럽의 여관을 운영하는 순례자는 헤브론에서 꺾어간 상수리나무를 자신의 여관 입구에 걸어놓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아브람이 천사를 환대한 그 정신의 상징이다. 순례자마다 얼마나 많이 상수리나무를 잘라갔는지 현재는 헤브론의 상수리나무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헤브론에 기독교인이 찾는 유일한 교회가 러시아정교회의 상수리나무교회다. 이 교회는 5000년 되었다는 아주 오래된 상수리나무를 귀하게 보존하고 있다. 4000년 전 아브람이 천사를 맞이했던 그 당시의 나무라고 주장한다. 중세 이후 헤브론을 다녀간 순례자들의 순례기에는 꼭 이 상수리나무가 언급된다.

4세기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성지를 찾아 처음으로 거대한 바실리카교회 4개를 세웠다. 베들레헴의 탄생교회, 예루살렘의 무덤교회, 감람산의 주기도문교회 그리고 또 하나의 교회가 바로 헤브론의 상수리나무 수풀의 마므레교회다. 당시 나사렛이나 갈릴리보다도 상수리나무 수풀 마므레는 교회가 세워질 만한 가치가 있었다.

여전히 성지의 상수리나무는 예배와 교회와 신성함의 상징이다. 평범하지 않은 성지의 상수리나무는 그냥 보면 한 종류의 나무지만 영적으로 보면 신성함이 깃든 영적인 나무임에 틀림없다.



이강근 목사 / 이스라엘 유대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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