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 가정예배 ] 2021년 9월 11일 드리는 가정예배

이필숙 목사
2021년 09월 11일(토) 00:10
이필숙 목사
▶본문 : 누가복음 20장 45절~21장 4절

▶찬송 : 370장



그리스도인이 지향하는 삶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다. '동행'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이상적인 관계를 표현할 때에 즐겨 사용하는 개념이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과의 동행에 대한 모범답안이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가난한 과부와 서기관을 포함한 부자들, 이 높고 낮음이 대비되는 본문 속에서, 특히 예수님께서 조명하시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동행의 의미 두 가지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을 선택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과부는 삶의 모든 것을 상실하였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삶을 채우며 살아가고자 했다. 서기관들은 조직적으로 과부의 집을 약탈하여 그들의 배를 채운 것으로 보인다(46~47절). 남편을 잃어 졸지에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게 된 여인의 마지막 남은 재산마저도 착복하기에 바빴던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그들에게서 나온 이 이율배반적 삶의 태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대한 여인의 갈급함과 여실히 대조된다. 아마도 그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여 하나님의 도우심 마저도 선택의 대상으로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의 눈은 외적인 조건으로 자신을 치장한 서기관과 부자보다 모든 것들 박탈당했음에도 하나님의 자녀 됨을 몸소 고백하고자 했던 이 여인을 향해 있다.

둘째, 하나님의 눈은 우리가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에 있다. 하나님 보시기에 부자와 이 여인의 차이는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었다(4절). 우선 부자는 '그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취하여 많은 이들 앞에서 자신의 고풍스러움을 드러내 보여주고자 했지만, 여인은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여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것을 따로 취하지 않고 가진 모든 것을 드렸다. 반면, 부자는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지분을 극히 일부 떼어 놓았다. 풍족함의 일부를 과시하며 드린 부자의 행동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그들 삶의 일부가 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자신의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전부를 드린 가난한 과부의 행동은 공교롭게도 그 여인에게 하나님은 그녀의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였음을 증명한 것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춤추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 삶의 모든 것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의 열악한 현실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사회적 해법도 필요하지만, 신앙인으로서 우리에게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을 우리 삶 그 자체로 여기고 그분과 동행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한 서기관들과 부자들의 삶이 아니라, 궁핍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겼던 가난한 과부의 결단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의기도

경제적, 사회적 고통의 때를 믿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해 주시고 때에 따라 주시는 돌보심으로 우리의 삶을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필숙 목사/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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