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십자가

[ 목양칼럼 ]

김현준 목사
2021년 09월 01일(수) 08:07
십자가는 교회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들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두려운 상황에서 용기를 얻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위로를 얻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소망을 얻는다. 그런데 요즘 많은 교회가 예배당 외부에 세우거나 부착한 십자가 불빛을 불편해하는 인근 주민들과 갈등을 겪고 있고, 십자가 첨탑을 강풍에 취약한 위험 시설물로 규정해 이를 철거하려는 관공서와 갈등을 겪고 있다.

십자가 불빛이 예배당 주변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피해를 준다면 관련 기준에 맞게 조도를 낮추거나 조명을 끄면 되고, 십자가 첨탑이 강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시설을 보강하고 안전하게 관리하면 된다.

교회가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미안한 일이고 개선해야 할 일이지만 우리 이웃들이 십자가를 빛 공해물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물로 바라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것이 단순한 불평과 걱정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불신과 불편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십자가를 향한 마음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마음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교회를 향한 불신과 불편한 마음을 거둬들이고, 십자가 불빛을 바라보며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선한 이웃이 되어주면 된다.

나는 빨간색 보온병과 관련된 사연 하나를 갖고 있다. 몇 년 전 겨울, 감기에 걸려서 잠긴 목소리로 힘겹게 주일 1부 예배를 집례한 후 목양실에서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교회 근처에 사는 40대 총각 집사님이 찾아와서 "목사님 감기 빨리 나으세요"라고 말하며 빨간색 보온병을 내밀었다.

보온병을 열어보니 따끈한 쌍화차가 가득 담겨 있었다. 젊은 총각 집사가 타준 쌍화차라 생소했지만 마음 따뜻했고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 집사님은 내게 빨간색 보온병을 건넨 후 골절된 다리뼈를 고정하느라 박아둔 철제 핀 제거 수술을 받기 위해 곧장 병원으로 가서 입원했는데 다음 날 수술 도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말았다. 경호원으로 일할 정도로 체격도 크고 아주 건강했기에 나를 포함한 모든 성도가 큰 충격을 받았고, 온 교회가 슬픔에 잠겼다. 이제는 시간이 꽤 흘러서 당시의 충격과 슬픔은 잦아들었지만 나는 어디선가 빨간색 보온병을 볼 때마다 내게 친절을 베푼 그 집사님이 생각난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날 것 같다,

이렇게 필자가 빨간색 보온병을 볼 때마다 그 젊은 총각 집사님이 생각나듯이 사람들이 십자가를 볼 때마다 자기에게 친절을 베푼 어느 기독교인이 생각난다면 적어도 십자가를 공해물이나 위험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 반대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를 불신하고 교회를 향한 불편한 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십자가는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라도 내어놓는 고귀한 희생의 상징물이다. 기독교인들이 주변 이웃들에게 자기를 희생하는 친절을 베풀면 그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따뜻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복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예수 믿는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푸는 선한 이웃이 되어주자.





김현준 목사 / 청파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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