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버덩 산책의 힘

[ 시인의눈으로본세상 ]

이재훈 시인
2021년 08월 11일(수) 10:00
나는 요즘 '예버덩 문학의 집' 집필 레지던스에 입주하여 여름 한철을 지내고 있다. 예버덩은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에 위치해 있다. 버덩은 "높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이 풀만 우거진 거친 들"이라는 의미로 예버덩은 옛날 버덩이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이곳은 풀이 우거진 들이 펼쳐져 있다. 앞에는 주천강이 말굽모양으로 흐르고 갯버들 군락 위로 백로들이 자주 날아다닌다. 앞들에는 고라니가 숨어다니며 꾀꼬리 파랑새가 우짖는다. 뒷들에는 자작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가 병풍처럼 방갈로를 둘러싸고 있다. 해거름이 되면 앞들에 자리한 '노을버덩'에는 노을이 진다.

이곳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것은 온갖 자연의 소리이다. 바람소리와 새소리, 매미소리, 풀벌레소리와 고라니소리도 듣는다. 강물 흐르는 소리는 끊임없이 귓가를 적신다. 자연이 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고요해진다. 오로지 자연과 호흡하는 몸을 느끼게 되는 순간 아주 평화로워진다. 그렇게 평화로운 고요와 마주하고 있으면 세상 온갖 시름을 잊는다.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고요 속에서 훌륭한 작품과 집필이 완성되면 좋겠지만 쉽지만은 않다. 나 또한 시집 출간, 에세이집 출간, 연구서 출간, 각종 학교 업무와 논문 집필, 여타 글쓰기 등을 한아름 싸가지고 들어왔다. 하지만 많은 결과를 얻어 올 것이라는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바로 휴식이다.

누구나 나름대로 취하는 휴식의 노하우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각종 취미생활과 여행 등을 통해 휴식을 취한다. 휴가철이 되면 피서를 위해 산과 바다를 찾아 나선다. 휴식은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는 산책을 통해 얻기도 한다. 산책이 주는 위안을 이곳에 와서 제대로 알았다. 휴식이 있어야 새로운 창조의 힘이 생긴다.

산책은 큰 휴식이 된다. 또한 누구나 산책을 하면 철학자가 된다. 소크라테스도 아고라를 자주 산책했다고 한다. 니체는 안질 때문에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자 산책을 시작했으며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전부 걷기에서 나온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칸트의 산책도 유명하다. 칸트는 매일 오후 12시 45분에 점심을 먹고 프러시아 쾨니히스베르크의 산책길을 매일 걸었다. 칸트의 산책이 얼마나 정확하게 매일 이어졌는지 동네 사람들은 칸트의 산책을 보고 시간을 맞추었다고 한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철학자의 길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책길이다. 산책길은 자신을 성찰하게 한다. 산책길을 통해 생각은 정리되며 깊어진다.

이문재 시인은 "나의 꿈은 산책로 하나/갖는 것이었다"(산책로 밖의 산책)고 얘기했다. 참으로 근사한 꿈이다. 윤동주 시인은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저녁에서 아침으로 통"(길)하며, 그러한 길을 통해 "내가 사는 것은, 다만,/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라는 성찰에 닿는다. 나 또한 산책로를 하나씩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지 깨닫고 있다. 예버덩에서의 산책로도 귀하게 얻은 목록이다. 이곳에서 매일 일정한 거리를 산책하며 생각의 품을 넓히고 있다. 산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다. 산책의 힘으로 새로운 작품이 또아리를 틀며 고개를 내밀고 있다. 예버덩 문학의 집은 조명 시인이 사재를 털어 조성한 곳으로 여기를 거쳐 간 작가들이 170명이 넘는다고 한다. 예버덩이 문학의 마을로 변화되고 있다. 작품이 구상되고 탄생하는 문학의 성소가 전국 곳곳에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이재훈 시인/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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