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전쟁

[ 시인의눈으로본세상 ]

이재훈 교수
2021년 07월 07일(수) 10:00
초등 5학년인 아들은 요즘 게임에 빠져있다. 대표적인 메타버스 게임인 로블록스를 비롯해 브롤스타즈 등 여러 가지 게임을 한다. 가끔씩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점수가 높은 편이라고 자랑을 한다. 그럴 때 칭찬을 해야 하는지, 게임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설 때가 많다. 아들은 올해 생일선물로 온라인게임을 사달라고 떼를 썼다. 이제 합체 로봇이나 자동차는 뒷전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듯 결국 온라인 게임을 사주고 말았다. 최근에는 용돈 대신 현질(온라인게임의 아이템을 현금주고 사는 것)할 수 있는 문화상품권이나 구글 기프트카드를 달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부모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들은 하루 종일 게임만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엄마와의 갈등은 극에 달하고 있다. 초등학생이 이성적으로 게임을 조절할 방법은 없다. 그렇기에 매일 시간을 정해서 한다. 윌요일은 1시간. 화요일은 30분. 하지만 예외상황과 핑계는 늘 따라다닌다. 실제로 아들은 여러 이유와 핑계를 대서 게임시간을 훨씬 더 많이 쟁취한다. 그럴 때 아들은 천재적인 잔머리를 발휘한다.

아들이 게임에 더욱 몰두하게 된 것은 코로나의 영향이 크다. 그 전에는 친구들과 밖에 나가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코로나로 집에만 갇혀 지내기 시작한 이후로 급격하게 게임시간이 늘었다. 이러한 현상은 아마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이 느낄 것이다. 아이들은 또래집단과 서로 건강한 소통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면서 사회성을 익히게 된다. 코로나는 이러한 사회적 성장과정을 특수한 성장과정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에게는 메타버스의 공간이 현실세계의 공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아들만 보더라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로블록스에서 만나는 횟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임 때문에 싸우지 않는 집은 없을 것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부분의 분란이 게임 때문이다. 게임을 못하게 하는 엄마와 몰래 게임을 하는 아들과의 첩보물은 사뭇 진지하기만 하다. 이런 것은 게임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게임은 중독성이 강하며 정서발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세대가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보면 혼이 났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하지만 시대는 달라졌다.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캐릭터로 메타버스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더니 전세계 인구 4억 2천명이 시청했다고 한다. 게임과 웹툰은 이미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며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전도유망한 산업이다.

누구나 중독에 빠지거나 새로운 것에 탐닉할 때가 있다. 나도 초등학교 시절 전자오락과 딱지치기와 구슬 모으기에 빠진 적이 있다. 중독은 인간들의 천형이며, 때론 이런 탐닉이 창조적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한다. 유명한 문학인들도 절대 본받으면 안 되는 많은 중독에 빠졌다. '진달래꽃'을 쓴 아름다운 서정시인 김소월은 아편중독이었으며 그것 때문에 사망했다, 한국의 시인들 중에 알콜중독의 예는 다 거론하기도 힘들 만큼 많다. 추리소설의 창시자이며 미국의 셰익스피어로 일컬어지는 천재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평생 알콜 중독에 빠져 지냈다. 결국 술에 취한 채 혼수상태가 되어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박중독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많은 편지는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이었으며, 역설적이게도 그의 많은 작품은 도박빚을 값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썼다고 전해진다. 만약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에 빠지지 않았다면 죄와벌이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같은 명작을 만날 수 없었을 거라는 웃지 못할 얘기도 넘쳐난다.

게임은 경쟁과 승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분투를 즐기는 인간의 본능이 게임이라는 장르에 압축된다. 그렇기에 게임 세계 안에서도 위계가 생기고 영웅이 생긴다. 또한 게임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신화와 민담, 인문학적 사유 등 여러 문화적 서사들이 스며들어 있다. 게임은 이미 청년들의 보편적 문화가 되었다. 오늘도 늘 쫓고 숨긴다. 게임을 둘러싼 엄마와 아들의 숨바꼭질은 마치 전쟁과도 같다. 나는 누구 편일까. 모른다. 편이 없다. 하지만 엄마 몰래 아들의 게임을 눈감아주고 서로 비밀로 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고 고백하겠다. 아들이 게임 속에서 사는 것 같지만, 꼬박꼬박 숙제를 하고 다음날 학교 준비물을 챙기는 것을 보면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이재훈 교수/시인, 건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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