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짜리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가?

[ 가정예배 ] 2021년 7월 10일 드리는 가정예배

한경인 목사
2021년 07월 10일(토) 00:10
한경인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1장 4절

▶찬송 : 436장



한국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가 떨어지고 혐오 집단이 되었고 기피 대상 집단이 되었다. 2~3세기 유럽, 특히 로마에 큰 팬데믹이 있었는데 그 속에서 교회는 사람들을 돕고 배려하고 치료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감당했다. 그때 로마시민들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품위가 달랐다고 평가를 했다. 지금 한국교회의 품위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불신을 주는 집단이 되었다.

우리가 물건을 살 때 돈을 지불한 금액만큼 그 물건의 가치가 주어진다. 천 원을 주고 사면 천 원 짜리가 되고 만 원을 주고사면 만 원 짜리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생명을 주고 우리를 사셨다면 우리는 '예수님짜리'가 된다. 우리는 악하고 추한 존재였지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음으로써 생명을 얻었고, 우리는 귀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짜리'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짜리' 인생은 어떤 인생인지를, 우리의 가치는 얼마인지를 말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인생이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신의 목숨으로 우리 값을 대신 치르시고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다. 신학적 용어로 대속이라고 한다. '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고 값을 치르다', '속죄하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치른 믿을 수 없는 희생이고 사랑인 것이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몸을 주셨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로부터 아무 대가도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다. 우리의 생명은 예수님의 죽으심의 대가로 받은 인생이다.

둘째,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방향이 바뀌고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며 스데반의 죽음을 지켜본 자이다. 살기 등등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맡기게 되었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종으로 살았다. 주님의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살아간 것이다.

셋째, 버러지 같은 인생이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신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4:14)"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버러지 같이 보고 혐오스러운 집단으로 볼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거룩한 이시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짜리'다. 기독교인으로 품위를 잃지 않고 '예수님짜리' 인생을 살아가길 바란다. 주님의 말씀은 성경 안에서 살아있지만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살아 있어야 한다. 말씀이 우리 삶에서 역사하고 살아있을 때 우리는 '예수님짜리'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기도

우리 삶이 말씀으로 변화되게 하시고, 말씀이 우리 삶에서 살아있어 예수님의 삶이 우리의 삶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경인 목사/오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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