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신사참배 피한 김마리아

[ 선교여성과 교회 ] 김마리아 리더십 소고 ⑧

최상도 교수
2021년 06월 03일(목) 09:00
사진=정신학원 제공.
안타깝게도 김마리아가 여전도회 10대 회장으로 일하던 1937년은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켜 대륙침략정책을 확대 강화하던 때였다. 따라서 일제는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내선일체를 강조하며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 궁성요배,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조선민족 말살 정책을 강하게 시행했다.

이를 위해 일제는 한국의 여성 지도자들을 부일 협력군으로 변질시키고 민중 여성들을 종군위안부 등 전쟁 수행의 도구로 삼았다. 일제는 교회를 부일, 변질시키기 위해 갖은 책동을 했고, 결국 장로교는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총회장 홍택기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신사참배를 국민의례로 보고 참배를 가결했다.

여전도회는 총회의 결의를 따라야만 했다. 당시 총회 여전도회 보고에서 "회의 시일을 단촉히하여 그 비용은 국방 헌금 五十원 하기로" 결의보고 하고 지출보고로 "국방헌금 五0.00"를 했는데 총회록에 "조선예수교장노회 여전도 연합 대회장 김마리아씨의 여좌한 보고는 받기로 가결하다"고 쓰고 있지만 동시에 "보고자 배명진"을 별도로 기재하고 있다.

신사참배를 가결한 총회 현장에서 회장 김마리아가 보고하지 않고 배명진이 대신 보고했다고 판단된다. 이듬해 여전도회 연합대회 회장은 이순남이며, 김마리아는 부회장이었다. 이해 총회 보고에서도 전해와 동일하게 '보고자 배명진'을 별도로 기재하는데, 결의 보고 내용에는 "2. 황군 위문금을 당석에서 의연한 일, 3. 황군 위문 전보한 일"이 포함돼 있으며, 총회록에 "여전도 연합대회장 이순남씨의 여좌한 보고는 받기로 가결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로교 총회가 1938년과 1939년에 일제에 굴복해 여전도회 역시 두 회기 동안 국방헌금과 황군 위문금과 위문 전보를 가결했지만, 당시 회장, 부회장으로 섬겼던 김마리아는 총회석상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일제에 굴복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마리아가 10대 회장으로 있던 1937년, 여전도회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를 다음해로 미뤄 신사참배를 모면했고, 이듬해 창립 10주년 기념행사도 정식으로 행하지 않고 예배만 드리고 산회했다.

1940년에는 총회를 유회시키고 실행위원회만 소집해 안건을 처리하며 신사참배를 피하고 장로교 총회 보고는 실행위원 대표로 김선경이 했다. 일제의 이러한 침략 말기 민족탄압 아래 많은 지도자와 지식인들이 변절했지만, 김마리아는 여전도회연합대회를 발전시켰음은 물론, 끝까지 굳건한 신앙의 기반으로 항일독립정신을 지키고 변절을 뿌리쳤다.

일제 강점기, 항일여성단체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 지도자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쉽게 예측할 수 있듯이 그것은 오랫동안 견디어야 하는 긴 고난과 고통의 여정이다. 이집트에서 백성을 이끌어낸 모세가 이집트 왕의 권력 앞에서 백성을 대신해 목숨을 내어놓고 서야 함을 의미하고, 동시에 백성의 불만과 불신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해 희망으로 돌려놓아야 하는 이중고의 삶이라 할 수 있다.

예견된 민족의 핍박 앞에서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며 왕 앞에 나아간 행동하는 지도력과도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김마리아는 일제 강점 하의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임을 역설했다. 일부는 그런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돼야 하며, 일부는 그 지도자를 따르고 협력하므로 지도자를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했다.

"… 우리는 우리의 노력으로 성취될 때까지 우리 자신의 다리로 서야 하고 우리 자신의 투지로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진정한 지도력(real leadership)과, 사상의 독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신에 의존한 개개인의 진취적 기상, 정신적으로는 더욱 협동적이고 일관된 언행일치, 이기적이 아닌 긍정적인 공익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이러한 이상적인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요. 모든 개개의 한국인은 그러한 지도력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지도자가 될 것으로 기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각 개개인은 지도자를 만들고 돕는 데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는 지도자가 되고 우리는 그 지도자들을 따르는 것입니다. 지도자를 성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협력입니다. 이집트에서 가난 속에 있던 유태인들이 하나님께 눈물로 해방을 호소하자 하나님이 구원자로 모세를 들어올린 것처럼 우리 한국인들도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와 비슷한 지도자를 들어올려 줄 것입니다. 그 지도자는 우리를 노예의 신분으로부터 약속된 풍요의 땅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최상도 교수 / 호남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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