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꼭 필요했던 바로 그 곳

[ 현장칼럼 ]

홍윤경 부장
2021년 04월 30일(금) 10:34
홍윤경
여성노동자 A씨에게 이곳은 청춘의 전부이자 학교였다. 어린 나이에 시골에서 상경하여 공장에서 일했던 그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옷 한 벌 사기 힘들었지만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공장에서 심한 욕설을 듣고 인권이 유린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그런데 이곳에 오게 되면서 두 눈이 번쩍 뜨여졌다. 노동법을 알게 되고 노동자가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라는 자각이 일어났다. 요리와 꽃꽂이 소모임에 참여하고 저축을 하며 꿈을 키웠다. 동료들과 힘을 모아 투쟁도 했다. 지금은 당연시되는 8시간 노동제를 위한 투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통신사 비정규직 노동자 B씨는 이곳이 호텔보다 고급지게 느껴졌다. 외벽은 허름하고 샤워실은 타일이 군데군데 떨어져 있었지만, 하루종일 거리 농성장에서 얼었던 몸을 온수로 씻고 등 따시게 누울 수 있다는 것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안전장치도 없이 지붕을 오르내리는 위험을 감수하며 일했음에도 부당하게 해고되었던 그는 억울한 마음에 서울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던 터였다. 유독 길었던 그해 겨울, 이틀에 한번씩 농성장을 떠나 쉴 수 있었던 이곳을 잊을 수가 없다.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 C씨는 이곳을 눈물과 안도의 장소로 기억한다. 비정규직을 위한다는 법 시행을 앞두고 해고된 그는 생전 처음 팔뚝질도 하고 농성도 했다. 그의 투쟁은 한때 YTN의 시간별 뉴스마다 보도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점차 잊혀지고 있었다. 그를 버티게 한 것은 1년간 이곳에서 매주 진행된 조합원 총회였다. 총회는 많은 순간 눈물바다였다. 하지만 서로를 확인하고 서러움마저 나누었던 그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면, 복직과 정규직화는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신학생 E씨는 선배의 소개로 '현장심방'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3박4일 동안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노동자 투쟁의 현장, 고난의 현장을 찾아가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기도했다. 밤에는 신학과 노동, 실천과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런 현실과 아픔을 모르고서 어떻게 목회를 할 수 있겠나 싶었다. 이곳에 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인권활동가 D씨는 수년간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몸도 마음도 소진되었다. 무료로 활동가 심리상담을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이곳을 찾았다. 무엇보다 상담 선생님이 사회활동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살펴보니 투쟁조끼를 입은 노동자들도 상담을 받으러 오고, 필요하면 늦은 밤이나 주말에도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났다.

지금까지 열거한 '이곳'은 '영등포산업선교회관'이다. 영등포산업선교회는 1958년 경기노회가 창립하였고, 영등포 공단 주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가 1978년에 독일교회, 미국연합장로교회, 영락교회, 노동자들의 헌금으로 현재의 회관을 지었다. 그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43년이 지난 지금, 십시일반의 손길들로 또다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 낡고 보수가 필요했던 회관의 리모델링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에 대한 첫 번째 기대는 더 따뜻하고 더 편안한 공간이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꼭 필요했던 이곳이, 더 많은 "누군가"에게 "더욱 더" 필요한 공간으로 거듭나는 기적을 함께 일구어갈 것이다.



홍윤경 부장/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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