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자와 함께 울라

[ 목양칼럼 ]

오수진 목사
2021년 03월 19일(금) 08:47
작년 봄,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접어들 무렵, 78세로 건강하셨던 아버지께서 급성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다. 긴급히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아버지와 함께 음압병실에 하루 24시간을 함께했다. 다행히 음성 판정이 나와 병실에 입원하셨지만, 상황은 악화되었다. 검사 결과, 급성폐렴과 폐에 가득한 종양의 소견을 받았다. 신속히 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데 이미 코로나19 감염환자들로 대형병원의 호흡기 병동은 이미 가득했다. 그사이에 안타까운 시간은 흘렀고, 불과 열흘 만에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 산소호흡기를 의존하여 내쉬던 가쁜 숨을 멈추시더니, 서서히 심정지가 오셨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마음이 이와 같을까? 사람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단 말인가? 속으로 삼키는 슬픔이 이런 것인가? 아버지 임종 앞에서 아버지의 삶이 보였다. 빈농의 8남매 셋째로 태어나 위로 두 형 공부시켜야 하고,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해야 하니 "너는 농사를 짓거라" 하시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신 착한 아들이셨던 아버지, 동기간에 유산 문제로 다툼이 있을 때 큰 형에게로 양보하자며 동기간들을 다독이며, 끝까지 큰형에 대한 예의와 동생들에 대한 신의를 지킨 아버지, 30살 노총각으로 23세 어린 신부를 맞아 49년간 한 번도 큰 소리 나도록 다투지 않으시고, 김장에다, 청소에다, 설거지에다, 매일 안부 전화로 아내를 보살핀 착한 남편이셨던 아버지, 3남매 모두 근면 성실할 수 있도록 삶으로 가르치신 아버지, 60년 전 시골 교회에 출석하면서 예수님 영접하시고, 청년 집사로 새벽종을 치며, 새벽을 깨우시던 하나님의 백성이셨던 아버지,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하면 차곡차곡 모아둔 용돈으로 목사 안수식 2주 전, 목사 성의 비용을 보내주신 아버지, 그래서 아버지가 더 그리울 것이며, 더 고마울 뿐이며, 미안할 뿐이다.

그런데 늘 고통을 당하는 성도들을 위로하던 목사가 서울에서 천안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준 성도들의 품에서 위로를 받았다. 코로나19로 오지 못한 성도들의 진심 어린 문자와 위로 전화가 가득했다. 직접 와주어 함께 울어주었다. 함께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는 사역자들, 한 길 걸어가는 동료 목회자들, 어릴 적 교제하던 친구들이 말이 아닌 토닥임으로 함께 울어주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이 나의 사건이 되었다. 장례를 인도하던 목사가 장례를 인도하는 목사님의 진심 어린 찬송과 설교에 은혜를 받는다. 그러면서 반성을 한다. 그동안 수십 번 수백 번 인도한 장례식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공감하며 인도한 것이 맞나 싶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나의 무뎌진 소명을 새롭게 한다. 충분히 위로를 받는 자가 충분히 위로할 수 있으리라, 충분히 고통스러운 자가 충분히 고통을 헤아릴 수 있으리라. 이제야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지 않을까?

산수유 꽃망울 피우던 봄날 부활의 꽃으로 피어나신 아버지가 보고 싶다.

오수진 목사/도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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