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일하신다

[ 목양칼럼 ]

김철민 목사
2021년 02월 24일(수) 13:12
아내는 나의 설교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가이다. 아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나의 설교가 어려운 데다 계속 집중하지 않으면 줄거리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력하지만 그게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덕분에 놀라운(?) 은사가 있음이 발견되었다. 실제 잠을 못 주무셔서 이런저런 치료를 받으며 2년 여를 고생하다 우리 교회에 나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신기하게도 내 설교 시간이면 '꿀맛' 같은 수면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본의 아니게 불면증을 치료하는 '신유의 은사'를 지닌 목사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오후였다. 차를 몰다가 우연히 극동방송을 틀게 되었다. 그런데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설마 했는데 방송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의 주인공은 바로 필자였다. 지난 주일 설교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평소 나는 내 자신의 설교를 잘 듣지 않았다. 주일날 몇 번을 설교하니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날은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아직 목적지까지 시간도 있고해서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아주 좋은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설교를 얼마간 듣다가 그냥 포기해 버렸다. 나름 설교를 준비하느라 고민도 하고 애를 썼다. 주석도 찾고 이것저것 참고도 하며, 거기다 기도로 무장하고 진리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것은 너무나 무기력하고 호소력이 없으며 결정적으로 지루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이다. 한 문장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 만연체로 질질 끌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곧 자괴감이 물밀 듯 몰려왔다. 성도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설교자 자신도 지루해 듣기를 포기한 그 설교를 매 주일, 수요일, 새벽 등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듣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그 성도들이 위대해 보였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가실 때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격려 어린 멘트까지 날리는 참 훌륭한 분들이었다.

그러나 이분들은 듣는 것 이상으로 말씀을 살아내려 자신을 드리는 분들이었다. '되로 받아 말로 내주는' 효과적인 삶을 사는 분들이었다. 작은 씨앗 하나가 뿌려졌는데 그것으로 삼 십배, 육 십배, 백 배를 거두어들이는 그런 효과적인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었다.

성도들의 묵묵한 헌신과 희생의 정신을 보며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다. 설교자 자신이 아니라, 그 말씀 자체가 일하시는 것임을! 그래서 다시 한번 주님께 무릎을 꿇게 된다. 말씀 본문이 드러나고, 그 본문을 말씀하신 주님의 모습이 보여지고 그래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말씀의 전달자가 되기를 간구할 뿐이다.

김철민 목사/대전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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