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된다는 것

[ 가정예배 ] 2021년 2월 17일 드리는 가정예배

반성석 목사
2021년 02월 17일(수) 00:10
반성석 목사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찬송 : 299장



오늘 본문은 질문을 통해서 답을 얻고 그 답을 넘어서는 답을 찾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대화의 방식으로 중반부까지 진행되고 있다. 율법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질문이 연결되면서 율법사가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물음에는 이웃에 대한 개념이 율법사와 예수님이 다른 것을 내포하고 있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율법사에게 다시 물으신다. 이 비유를 통해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 묵상해 보자.

예수님의 이웃은 어떤 한 부류가 아니다.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을 싫어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상종하지 못할 사람들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은 이웃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웃은 어떤 것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게 이웃은 모든 사람이다. 그 사람의 출신 성분과 상관이 없다. 사마리아인이 착한 이웃이 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이웃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땅에 가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셨다. 이방인의 지역인 거라사에 가셔서 광인을 고쳐 주셨다. 로마 백부장의 하인을 고쳐 주셨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혈루증을 고쳐주셨다. 이방인의 이웃이 되는데 예수님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난한 자도, 세리도, 열혈당원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유대인에게만 보내신 것이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에게 보내셨다.

예수님의 이웃은 내가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상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씀하신다. 누군가가 나의 이웃이 되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 되는 것이다. 나의 필요로 이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한 이웃이 진정한 이웃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처한 고난을 절대 외면하지 않았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도와줄 사람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그의 이웃이 된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믿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이웃이 되지 못했다.

예수님의 이웃은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의 있는 것을 나누어서 강도 만난 사람을 살린다. 관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 강도 만난 사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말로만 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 보여준다.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바람이 없이 사랑을 나눈다.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몸소 실천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코로나19로 교회가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손가락질하는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이웃이다. 우리도 율법사처럼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이웃을 내 안의 틀에 가두어 놓고는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이웃이 되어주지 못한 교회와 우리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우리 가정과 섬기는 교회가 세상속에 이웃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하며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성석 목사/남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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