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서거 50주년과 교회의 선교적 응답

손은정 목사
2020년 11월 18일(수) 07:27
평화시장 앞에 서 있는 전태일 동상.
청년 전태일이 생존경쟁과 성장신화에 갇혀 있던 사회와 교회를 흔들어 깨우며 죽어간 지, 50년이 지났다. 필자가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말 신학교에 입학하고였다. 선배들의 소개로 만난 책이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이었다. 청년 예수와 같이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이 사람에게서 강렬한 도전을 받은 이후, 이 책을 후배들에게도 소개해서 같이 읽었다. 3년 후배에게도 소개해서 같이 읽었는데, 이 후배가 이 책의 감화력이 커서 그랬는지 그 후로 필자의 뒤를 따라다니더니 10년 후에는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올해는 특별히 50주년이라 작년부터 기대를 하고 있었다. 50주년에는 조금 더 특별하게 전태일의 삶과 죽음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다, 다행히 작년에 청계천에 세워진 전태일 기념관에도 2번 가보았다. 기념관에서 특별하게 만난 새로운 점은 전태일은 태일피복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피복회사를 차리기 위해서 매우 구체적이고 정교한 착상과 준비를 했다는 점이었다. 너무나 가난한 노동자였고, 22세까지 오로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서만 살고 죽은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청년은 한때 사업가를 꿈꾸었던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을 그가 쓴 노트에서 발견했다. '노동법을 지키면서도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업체'를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부정적인 약점과 긍정적인 장점이 무엇인지를 한 페이지에 줄을 긋고 나눠서 조목조목 열거하며 분석하고 있었다. 이것은 매우 새롭고도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노동과 경영이 서로 배척되지 않고 인도주의적인 정신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모범업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었다.

현재 한국교회가 사회적 소통력이 부족한 집단으로 비난을 받고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은 참 속상하고 안타깝다. 기독청년 전태일이 50년 전에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며 정의를 세워가고자 보여준 집요함과 끈기와 나눔과 헌신의 삶은 지금 우리 교회가 그 어느 때보다 다시 배워야 할 위대한 예언자적 정신이고 신앙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의 노동자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1970년대에 비하여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는 많이 안정되었다. 양대 노총도 힘이 있고, 직장갑질에 대해서 알릴 수 있는 창구도 생기고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아진 부분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택배노동자와 같은 플랫폼노동자들의 현실은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고 총알배송이란 말이 암시하듯 극심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의 차별과 소외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고,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만만찮게 열악하다. 앞으로 인공지능 로봇의 시대에 일자리가 줄게 되면 이 상황은 더욱 복잡해 질 것이고, 사회적인 갈등도 더욱 증폭될 것이다. 이러한 때에 한국교회는 노동자들이 더불어 함께 노동하고 저녁있는 삶, 주말이면 편히 쉬면서 예배하고 쉴 수 있는 길을 만들어내는 일에 대해 우선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며, 사회적인 책무를 다해야 한다.

구약의 미가 예언자가 당대 정치종교지도자들이 백성들의 안전과 생명보다는 돈에 눈이 멀어서 자신들의 권력만을 앞세울 때 그것을 꾸짖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과 능력과 정의감이 있었기 때문이다.(미 3:8) 최근에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 안주하고 살고 있는 것은 어두운 현실에 대한 정보나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새삼 느끼며 반성하게 된다.

1년에 산업재해로 2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하고, 올해만 해도 택배노동자가 13명이 과로사 했다. 그러나 이 숫자들이 그저 숫자로 보이고, 그 이면에 나와 같이 키워야 할 아이가 있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죽어간 그 노동자를 내 몸처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웃을 입이나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 실존적으로 느끼고 응답하라는 뜻이다. 전태일은 이 말씀을 자신의 몸으로 살아내고, 응답한 참된 기독인이었고, 당시 돈에 눈 먼 정치권과 기업주들과 언론을 매섭게 꾸짖으며 하나님의 정의를 외친 예언자였다는 것을,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인식하고 기억해야 한다.



손은정 목사/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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