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델 베리(Wendell Berry)의 농본주의적 비전

농민은 '땅의 청지기'이자 '하나님의 신비를 분배하는 이들'이다

정희원 교수
2020년 11월 11일(수) 08:01
웬델 베리는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농본주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묘사한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이다. 그는 지난 50년간 시 소설 에세이 강연 등을 통해 대지, 본향을 망각한 산업화된 현대문명의 파괴성과 영향력을 분석 비판하고 농본주의적 세계관과 실천을 통한 설득력 있고 가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촉진시켰다. 웬델 베리에게 농본주의는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총체적 방식으로 폭력적인 현대 산업문명에 실질적이고 필요불가결한 해결책이다. 웬델 베리의 농본주의 이해는 인류에게 자유와 진보를 가져왔다고 믿어 온 이주성에 관한 통찰에서 출발한다. 일례로 농촌 인구의 도시로의 대규모 이주는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발전을 초래했다는 것이 일반적 통념이다. 농민들은 도시로의 이주로 제한된 직업, 열악한 수입에서 벗어나 고용 기회의 증가, 삶의 질 향상 등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웬델 베리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의 오류와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산업화 과학화된 사회의 열렬한 지지자들이 도모하는 사회 경제적 변화가 인간의 자아 상실과 무책임성을 야기했고 증대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농촌인구의 도시 이주화 정책은 모든 산업의 근간인 농업분야의 몰락을 가져왔고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소위 기술력으로 무장한 '기업형 농업'으로의 전환은 심각한 환경 파괴, 농촌 공동체 파괴 등을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웬델 베리는 이러한 근대문명의 이주성이 초래한 폐해를 모든 생명의 근원인 거룩한 대지를 생산의 물적 자원으로만 치부하는 인간의 몰이해, 재화의 획득 생산 소비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과정을 무시하는 인간의 무책임성, 창조 세계의 신비와 질서, 섭리를 인간의 경험과 실험으로 설명하는 환원주의적 세계관, 과학주의에 근간해 경제 지식 문화의 무한 성장과 발전이 가능하다는 자기 최면에 함몰된 인간의 오만함, 피조물인 인간이 대지의 다른 구성원들과 더불어 의존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한 인간의 무지 등이다. 웬델 베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산업화로 야기한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대처 방안이란 것들도 오래 전 대지를 파괴했던 방식과 인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것은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섭리를 주관하는 존재,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이해를 기초로 웬델 베리는 우리 사회가 농본주의를 진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를 두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첫째 농본주의가 인류 문명의 근본이자 인간 문화에 광범위하게 자리하고 있고 둘째로 농본적 원칙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문화 갱신의 원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농본주의는 우리의 이해 헌신 실천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사고방식이자 먹고 마시는 문제를 포함해 모든 문화적 행위의 근간에 초점을 맞추고 공적 삶과 개인적 삶의 모든 면면에 거미줄처럼 뻗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본주의의 필요성과 원칙을 제시한 웬델 베리는 나아가 비포용적이고 소모적인 현대 산업경제와 지식경제를 초월하는 '위대한 경제', 즉 '하나님의 나라'를 제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위대한 경제'를 조성, 촉진시키고 산업경제의 파괴적인 관행과 사고 방식에서 탈리할 실제적인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 그는 먼저 오늘날의 파괴적 문화를 탈피하기 위한 상상력의 필요에 대한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선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래의 세상은 현재와 확연히 달라야만 하고 다를 수 있다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현 체제의 문제가 단지 생산자만의 잘못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에서는 무제한적인 탐욕의 공생관계가 상존하고 아래에서는 게으르고 수동적이며 자신에게만 관대한 소비생활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러한 습관과 태도에서 탈피하려면 일상에서 입고 먹고 사용하는 것들이 어떻게 생산되며 유통되고 처리되는지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고 촉구한다. 이렇게 웬델 베리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비전임을 제시한다. 이는 우리 모든 삶의 영역의 근간인 대지와 우주의 섭리에 관한 올바른 지식에 기초한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에 관한 구체적인 통찰을 의미한다.



정희원 교수(계명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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