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는 몰랐습니다

[ 목양칼럼 ]

김명서 목사
2020년 11월 06일(금) 11:07
똥지게 지면서 목회 훈련받은 적이 있는가? 조치원 정중리라고 하는 곳에서 교육전도사를 3년 정도 했다. 은퇴를 약 4년 정도 앞두신 목사님을 모시면서 교회학교에다가 교회 관리를 도맡아 하던 시절이었다. 교회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화장실에 인분이 가득 차면 그 인분을 바가지로 퍼내서 가까운 밭에 뿌려야만 했다. 문제는 항상 노 목사님은 교육 전도사인 필자를 시키곤 했다.

인분을 퍼 나르는 방법이 있다. 대개가 화장실에 오랫동안 있었던 인분은 좀 딱딱하게 굳게 되는데 인분을 푸는 바가지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일단 딱딱하게 굳은 화장실에 물을 많이 붓고는 한참을 휘휘 저으면 좀 걸쭉하게 된다.

어깨에 메고 인분을 나르는 똥지게 양옆에 인분통을 가득 채우고는 교회 앞에 있는 밭으로 날라야만 했다. 여기서도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인분을 메고 갈 때 균형이 잘 맞지 않으면 인분 통에 담겨 있던 내용물이 철렁거리면서 온몸에 튀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인분통을 지고 나르면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내가 목회자인가 아니면 똥지게나 지는 사람인가? 필자는 정말 이해가 안 되었다. 어떻게 목회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똥지게를 지고 있는가? 일 년이면 두 번씩, 3년 동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꼭 필자에게 똥지게를 맡겼다. '똥지게 지는 것도 사명인가?' 이 갈등을 하며 언젠가는 이곳에서 도망가야지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어느 날 노 목사님과 사모님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아니 왜 그렇게 전도사님을 못살게 하고 저렇게 똥지게를 지우느냐?" 노 목사님은 말없이 한참을 있으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똥지게도 못 지는 놈이 무슨 목사가 되려고 해, 이것도 못 하면서 무슨 종이야,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그렇고 그런 놈뿐이 더 돼."

그때는 몰랐다. 그러나 목회 현장에서 교육전도사로부터 약 30년 동안 교회와 성도를 섬기면서 노 목사님의 가르침을 새록새록 깨닫게 된다. 너의 낮아짐으로 교회가 살고 성도들이 살아난다. 똥지게 지고 인분 퍼 나르는 그 정신으로 섬겨라. 그러지 못하면 똥보다 못한 목사이다.

시대가 아프다. 교회가 아프다. 성도들이 아프다. 그 상처를 조금이나마 싸매 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상처를 덧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조용히 침잠해 본다. 똥은 썩어져 거름 되어 새 생명을 잉태케 하는 자양분이라도 되는데 나는 똥보다 못한 목사인가?

김명서 목사/가좌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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