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 목양칼럼 ]

이형균 목사
2020년 10월 16일(금) 09:05
어린 자녀를 키우다 보면 부모로서 몇 번의 위기는 응당 경험하게 된다. 셋째가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체온계를 꽂을 때마다 계속 오르더니, 40.2도를 찍었다. 그날따라 해열제도 챙기지 못한 상태였다. 중부고속도로 위, 상습정체 구간, 앞뒤 좌우로 꼼짝없이 갇힌 신세, 가까운 병원으로 빠져나갈 램프도 마땅치 않아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둘째 아이가 고열로 눈이 뒤집히는 일을 경험했던 터라 갑작스러운 상황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가장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핸들이 무슨 죄라고 멱살 잡듯 움켜쥐고 주여! 주여!를 연신 외쳐댔다. 당황하는 남편과 달리 아내는 아이 옷을 벗기고, 생수를 가재수건에 적셔 아이의 겨드랑이니 사타구니를 닦아냈다. 몸은 쳐지고 숨은 가쁘게 몰아쉬었지만, 잘 견뎌주었고, 그렇게 고비를 넘겼다.

골든타임이라는 단어하면 아마도 전국민은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해군 출신인 나로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복원력을 잃은 배와 그 안에 타고 있는 승객들이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말이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국종 교수와 닥터헬기도 골든타임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이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라도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열정 하나에 반해, 나는 그의 책 '골든 아우어'를 사 두었다. 응급환자와 그들을 대하는 의료진들의 다양하고 긴박한 상황을 보면서 생명을 다루는 분들의 영성을 책 속 행간에 숨은 피 냄새를 통해 느꼈다. 어디 골든타임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경험되어지는 것이겠는가?

몇 해 전 2년 후면 환경미화원을 퇴직하시고 집 가까이 오셔서 인생 후 반전을 계획하는 분이 계셨다. 바지런히 주말마다 내려와, 조그만 밭에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땀 흘리시던 이웃이었다. "토욜 저녁, 내일 봅시다"하고 올라간 다음 날, 담양근교 국도로 내려오다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고, 전도대상 1호였는데 그만 생을 마감하셨다. 그리고 연이은 또 한 번의 충격, 마을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나에게 밭을 지어보라고 내어주신 분인 '종덕이 어르신'이 새벽에 마당을 나오시다가 쓰러지셨다. 아침에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는데, 한 열흘 있다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농담처럼 "어르신 날도 더운데 며칠 있다 닭 잡아드릴 테니 그동안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했었는데,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갑작스레 두 분을 보내면서 사역을 돌아보게 되었다.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와 농업을 병행하면서 매일 전도를 하고 다닐 수는 없지만, 틈틈이 만나 관계를 쌓아온 분들이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 때 미루지 말고 복음을 전할 것을 하면서 땅을 치고 후회했다.

하루도 몇 번이고 다니는 길, 우물 앞 어르신이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날 오후 계란을 들고 찾아가 두 내외 어르신을 앉혀놓고 복음을 전했다. 평소 나는 젊음으로 섬겼고, 어르신은 예뻐해 주셨다. 마음을 얻은 후라 기뻐하며 영접기도를 따라 하셨다. 며칠 후 가까운 남원요양원으로 들어가신지 한 달쯤에 돌아가셨다. 소식에 세례까지 드릴 것을 하는 아쉬움이 또 밀려온다. 오늘도 또 다른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농촌 마을을 한 바퀴 돌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형균 목사/선한이웃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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