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어떻게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을까?

교회 내 가부장적인 남성중심 문화가 성폭력 키워
성인지 감수성 향상 위한 교육 필수, 교회법 마련해야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0년 06월 08일(월) 11:04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9살 어린 아이는 그 고통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었어요. 매일 울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세요." 지난 5월 28일 유튜브 채널 '세바시 강연'에서 친족 성폭행 피해 경험을 털어놓은 김영서 씨의 사연이다. 현재 성폭력 상담사로 일하는 그는 "나를 비난하기보다 이해해주고 공감해준 교회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면서 '내 방에서 n번방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텔레그렘 n번방'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피해자 구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진행한 '디지털성범죄 피해 실태 및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작 피해자 상당수가 "주변 사람들이 피해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피해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총회도 n번방 사건 성명서를 발표하며 "모든 성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육체적 심리적 영적 회복을 돕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강조하면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강력한 처벌을 통해 교회 내 성범죄를 묵과하면 안될 것"이라고 강조해 주목받았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총회의 의지가 실제 교회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교회 문화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회의 경직된 성문화가 피해자에게는 성적수치심을 유발하고, '용서'와 '화해'라는 명목으로 가해자에게는 관대하고 피해자에게는 엄격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정혜민 목사(브릿지임팩트)는 "교회가 시끄러워진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교회를 나가거나 침묵하길 강요한다"면서 "그중에서도 용기를 낸 피해자들은 꽃뱀이나 이단 취급을 받으며 극심한 성수치심을 겪고 자살까지 하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정 목사는 "총회 내 특별 기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올바른 성교육이 먼저"라면서 "혼전순결의 옳고 그름만 강조하고 건강한 성을 율법에만 가둬두는 교육은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교회 내 분명한 (성범죄와 관련한) 교회법이 마련돼야만 피해자들은 보호를 받고 가해자는 처벌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페이스북에 n번방 사건에 관한 청원 형식의 글을 올리고 교단 입장 표명 및 대안마련을 요청한 정지혜 목사는 "교단에서는 2016년 '목회자윤리강령'을 제정하고, 지난 104기 총회에서도 성범죄에 관한 헌법을 개정하는 등 교단 내 성범죄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세상이 교회에 기대하고 요구하는 윤리의 수준은 특별히 높기 때문에, 교회가 사회보다 더 빠르고 엄격하게 이 부분에 대한 기준을 미리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이에 관한 인식 개선과 예방을 위한 ‘교육’의 의무적 시행과 성범죄에 대한 엄중한 치리를 위한 ‘법’개정이 시급하게 요청된다"고 덧붙이며 "누가 이 폭력을 당했냐가 아니라 누가 이 폭력을 저질렀냐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으며, 2차 가해역시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여성상담소 채수지 소장도 "피해자들은 교회를 분열시키는 음해세력으로 치부돼 보호받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채 소장은 "교회 내 남성중심 구조, 목회자의 신격화 등이 성폭력을 자연스럽게 조장하는 것"이라면서 "성폭력은 폭력이며 범죄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교육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채 소장은 "일반 직장인들도 정기적으로 성인지감수성 향상과 성평등한 조직문화에 대한 교육을 받는데 목회자들은 배제되어 있다.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내며 "총회 내 핫라인을 설치해 피해자들이 언제든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상담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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