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최고의 배려다

[ 목양칼럼 ]

김유현 목사
2020년 05월 15일(금) 00:00
교회는 '넉넉히 기다려 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교회에서 사용하는 '제자훈련', '양육'이라는 말이 그 의도하는 선한 뜻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조급함'으로 읽혀질 때가 있다. 기다림은 단순히 거쳐가는 시간의 통로가 아니라, 예기치 못했던 진리나 뜻밖의 통찰을 얻은 수 있는 시간으로 생각하며 살기에 미덕으로 가장한 속도에 속지 않으려고 부단히 싸우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교회에는 새 가족 양육프로그램 하나 없다. 교회에 와서 '이제 이 교회에 다녀야겠다'라고 결심한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기다림은 물리적인 시간을 보내는 지루함이 아니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며 안으로 집중하는 시간이다. "영성생활은 하나님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순간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라는 아브라함 헤셀의 말처럼 '거룩한 순간'을 마주하도록 기다리는 것보다 더 큰 양육이 어디 있을까?

"여기서, 다시 신앙생활을 해 보려고요. 용기가 생겼습니다." 2년 전에 교회에 온 한 성도의 고백이다. 성도는 예배시간에 커피를 갖고 들어왔다. 그리 크지 않은 규모의 교회이니 이 낯선 모습이 눈에 금방 들어왔다. 예배가 끝나 인사를 나누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고 얼른 나가버렸다. 바쁜 일이 있어 본 교회에 못 가서 왔으려니 했는데, 그 후에도 커피를 갖고 쌀쌀한 태도는 여전했다. 그래도 예배에는 빠지지 않으셨다. 그렇게 교회에 오길 6개월이 지났을까. 그 성도는 교회에 등록을 했다. 율법주의적인 부모가 싫어 지긋지긋하게 싸웠다고 한다. 성도에게 결혼은 그 부모로부터 벗어나는 돌파구였다. 교회를 멀리 한 것은 당연했고, 일종의 해방감도 느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늘 있었지만 워낙 상처가 깊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리 교회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큰 용기를 내 교회에 나오게 됐다고 했다. 예배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져 등록까지 하게 됐다고 한다. 덧붙여 "귀찮게 하지 않아서 교회를 등록하게 됐다"라는 말을 하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성도는 미국에 두 달간 다녀 올 계획이라 정식으로 인사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등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성도는 "말씀 드리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네요"라고 말했다. 좋은 여정이 되도록 함께 기도했고 큰 짐을 내려 놓은 듯 맑은 웃음을 짓고 귀가했다. 지금은 새벽기도회도 나오고, 예배 시간에 커피도 안 가지고 들어온다. 그를 위해 교회가 한 일은 구원의 확신을 가르치고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입바른 소리를 하지 않고 그저 성도 자체를 인정하고 기다렸을 뿐이다. 기다림의 시간에는 서로에게 꺼림과 거부감이 녹는다. 기다림은 교회라는 구조의 의지와 의도에 그가 얼른 동요되길 바라는 '조바심'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시간이다.

김유현 목사/태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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