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체의 가시는 주님의 인도하심"

'장애인을 그리는 세계 유일의 화가' 김근태 화백.
오는 5월 13일부터 40일간 '오월, 별이 된 들꽃'전시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0년 04월 19일(일) 18:23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한 쪽 눈을 잃었고 청각의 80%를 잃었지만 나의 신체적 한계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몸은 아프지만 덕분에 더 몰입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더 좋은 작품으로 천사들의 목소리를 대신 들려줄 수 있어 다행입니다."

김근태 화백(목포 사랑의교회)은 30여 년간 '지적장애인의 아픔을 화폭에 담아 온 세계 유일의 작가'다. 그 자신도 한쪽 귀와 한쪽 눈을 잃은 장애인이다. 설상가상 최근에는 나머지 귀와 눈까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러나 김 화백은 "내가 지닌 육체의 가시가 작품에 더 몰입하게 했고 장애인들과 나를 더 가까이 묶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면서 "지적장애인들과의 소통은 세상의 언어로는 한계가 있다. 그들과의 영적 교감에 더 몰입하고 영혼을 비춰내도록 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이라 여긴다"고 고백했다.

최근 5.18민주항쟁 40주년을 맞아 '오월, 별이 된 들꽃' 기획전을 준비하는 김근태 화백을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술과 정처없는 방황, 네번의 자살시도. 끊임없는 공허함과 좌절감으로 괴로웠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그는 광주에서 온몸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켰던 대학생이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끔찍한 현장을 눈으로 목격했다. 무섭고 두려웠다. 결국 도망쳤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으로 세상과 함께 할 수 없었다. 도망치듯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다시 돌아온 고국에서 그는 발달장애인과 지적장애인들이 누워서 생활하는 목포 공생재활원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그는 "바로 이것이다!"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들을 그리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들을 돌봐주며 그림을 그리면서 오랫동안 함께 지냈다.

그러나 장애우들의 영혼을 그림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자책이 커졌다. "너무 힘들어 하는 나에게 아내가 여행을 권했다"는 김 화백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났다"면서 "나의 마음은 완전히 사로잡혀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도 매일 뜨겁게 하나님을 만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 길은 내게 주신 사명의 길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김 화백의 눈과 귀가 흐려지면서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서술이 사라졌다. 상징과 암시가 더해지면서 형상이 점차 생략되더니 최근에는 아예 비정형의 추상화면들이 주류를 이룬다. 어쩌면 지난 40여 년 오랜 세월 동안 내면 깊숙이 엉겨 붙어있던 5.18의 상처와 고통의 딱지들이 세월 속에 삭아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조인호 평론가(전 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실장 )는 김근태 화백의 그림을 "내면의 눌러붙어 있던 고통의 앙금이든, 정신의 해방구처럼 찾게 된 천진무구한 세계로의 일탈이든 김근태의 작업은 그동안 삶과 작업의 궤적 위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나는 자폐아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한다. 현상세계와의 소통을 차단하면서 '나'를 이루고 있는 심신의 틀에서 벗어나 영적 무한세계에서 자유로움을 펼쳐가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이제 그가 그토록 고통스러워했던 트라우마의 장소(옛 전남도청)에 오랜 시간 돌고 돌아서 씻김과 용서를 청하는 작업들을 들고 다시 찾아왔다. 그는 오는 5월 13일부터 6월 21일까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5관에서 40일 동안 전시를 연다.

"오월 시민군들의 주검이자 행불자들이면서 지적장애아들의 몸뚱이기도 한 1000여개 토우들. 진압군의 군화발소리와 헬기소음, 오월 어머니들의 목소리들….

그는 "이번 전시는 나는 물론 동시대 집단의 상처로 남았던 오월의 희생과 상처로부터 정신적 치유와 자유로의 승화를 위한 작업"이라면서 "오월의 가슴으로 나의 상처 깊은 가슴으로 세상 뒤 소외된 영혼들, 소수자들을 보듬고 씻기면서 보편적 인권가치와 화합과 평화로 확장되길 원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나는 그림으로 찬양하고 예배한다. 세상 끝까지 그 구원의 아름다움이 노래되도록 시와 찬미로 그림으로 올릴 것이다"는 김근태 화백. 그는 2015년 국내 화가 중 최초로 미국 뉴욕 유엔 갤러리에서 세계장애인의 날을 기념해 전시회를 개최했다. 유엔본부에서 김 화백이 선보였던 작품은 '들꽃처럼 별들처럼'으로, 이 작품은 100호 캔버스 77개를 이어 붙여 길이가 100m에 이르는 대형 회화 작품이다. 지적장애 어린이들이 자연과 하나가 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최은숙 기자
이 기사는 한국기독공보 홈페이지(http://www.pckworld.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