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과 숟가락

[ 현장칼럼 ] 라오스의 끝나지 않은 전쟁:

서재선 목사
2020년 04월 20일(월) 00:00
성서에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다양한 상징과 은유들이 있다. 사자와 어린 양이 같이 뛰어노는 곳, 어린 아이가 독사 굴에 손 넣고 장난쳐도 물지 않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사야서 2장에도 널리 알려진 상징이 하나 나온다. 사람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으로 만드는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칼과 창으로 상징되는 갈등과 폭력과 전쟁은 보습과 낫을 통해 평화와 화해, 공존으로 전면적인 탈바꿈이 있게 될 것이다.

그렇다. 칼이 쟁기가 되고 창이 낫이 되는 세상은 틀림없이 전쟁 없는 나라, 평화로운 세상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포탄이 솥이 되고, 탄피가 숟가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에 시달리는 나라가 있다. 바로 동남아시아의 라오스다. 이곳에서 포탄 솥과 탄피 숟가락은 다시는 전쟁이 없을 것임을 알리는 종전 선언이 아니라 여전히 전쟁 중임을 알리는 사이렌과 같다.

1964년에서 1973년 사이, 한참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군은 2차 세계대전 중 유럽 땅에 떨어진 폭탄의 3.5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을 동남아시아 곳곳, 특히 라오스 땅에 떨어뜨렸다. 베트남과 라오스 사이 산악지대를 통과해서 물자와 인편이 오고가는 이른바 호치민 루트를 파괴하고 라오스의 친베트남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바가 없기에 비밀전쟁이라고 불리는 40여 년 전의 이 폭격은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라오스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미군이 비행기에서 투하한 집속탄은 로켓 모양의 모(母)폭탄이 목표상공에서 터지면 그 안에 수백 개의 자(子)폭탄이 쏟아져 나와 목표물을 공격하는 폭탄이다. 문제는 자(子)폭탄의 30%는 불발탄(UXO)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 년 전에 터지지 않은 땅에 박힌 불발탄들이 라오스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매년 3백 명 이상의 라오스 사람들이 끝나지 않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아직도 목숨을 잃거나 다리를 잃고 있다. 가장 큰 피해자는 물론 어린아이들이다. 테니스공 크기의 이 자(子)폭탄은 라오스 전통놀이에 쓰이는 공과 비슷해서 아이들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인 것이다. 이런 불발탄들이 8천만발이 넘게 남아 있는, 세계 1위의 불발탄 오염 국가인 라오스에서 어떻게 전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는 COPE센터라는 곳이 있다. 두 동으로 이뤄진 이 작은 건물은 의수나 의족을 지원하고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라오스 불발탄 피해자들의 재활을 돕고 있는 비영리기관이다. 라오스 내 불발탄 피해의 내용과 규모를 설명하고 있는 이곳 내부의 전시실에는 또한 불발탄이 어떻게 라오스 삶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커다란 모(母)폭탄은 큰 솥이 되고, 농기구가 되고, 심지어 집의 기둥이 된다. 조그마한 자(子)폭탄은 휘고 펴서 숟가락이 되고 밥그릇이 되고 대야와 철제 컵이 된다. 반으로 잘린 폭탄으로 만든 화단에 녹색 생명이 자라는 모습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전쟁은 밭을 갈고, 집을 짓고, 물을 담고, 밥을 입에 넣는 중에 여전히 라오스 사람들의 삶에 살아 있다. 의족과 의수와 개인적 또는 집단적 트라우마로 여전히 라오스는 전쟁 중이다.

라오스의 아이들에게, 1년이면 300번은 폭탄이 터지고 있는 그들의 삶에, 구원의 기쁜 소식은 무엇보다 그들의 땅 여기저기에 가시처럼, 대못처럼 박힌 그 많은 폭탄들을 뽑아주는 것이 아닐까? 공 모양의 전쟁이 아닌 진짜 공놀이를 그들의 땅에서 마음껏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보습과 낫이 끝나지 않은 전쟁의 공포가 아니라 정말로 와 버린 평화의 상징이 되도록 돕는 것이 아닐까? 마음껏, 있는 힘껏 자신들의 땅을 껴안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서재선 목사/한아봉사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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