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중심에 서는 기독교 가정

[ 4월특집 ] n번방 사건,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3.가정교육부터 바로잡아야

고원석 교수
2020년 04월 15일(수) 00:00
n번방, 우리 사회의 민낯

n번방 류의 성범죄는 온 국민을 경악케 하였다. 특히 그 범죄의 핵심 가해자들 중에 10대 미성년자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성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달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유로울 수 없는 부끄러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바라보면서, 이 문제를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사실 그 해답은 간단하다. 가정에서부터 문제해결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가정교육의 지침을 구약성서 십계명을 근거로 제안하고자 한다.



n번방, 현대인의 우상숭배의 결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십계명은 샌드위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십계명의 앞과 뒷 부분을 이루고 있는 8개의 계명은 "…하지 말라"는 금지계명인 반면, 중간부분을 이루는 2개의 계명은 "…하라"는 긍정적인 계명이다. 십계명의 앞쪽을 감싸고 있는 세 개의 금지계명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즉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통합할 수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 가정은 이러한 우상숭배의 문제에서 자유하다고 생각할는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십계명의 뒷 부분을 감싸고 있는 다섯 계명은 이 '우상숭배'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즉, 욕심의 우상, 권력(경쟁)의 우상, 거짓의 우상, 성(섹스)의 우상이다. 십계명은 이러한 네 가지 우상들이 어떤 끔찍한 결과로 연결되는지 보여준다. 욕심의 우상은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의 것을 도적질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8,10계명). 권력의 우상은 권력을 위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거나 심지어 남의 목숨을 빼앗는 살인까지 서슴지 않게 만든다(6계명). 거짓의 우상은 자신의 거짓은 못 본채 하고 남의 거짓만 들추는 위선에 빠진다(9계명). 성의 우상은 사람을 쾌락의 노예로 만들고 가족이나 부부간의 질서마저 파괴한다(7계명). 결국 욕심, 권력, 거짓, 성의 우상은 도적질과 폭력(살인), 위선과 성적 무질서를 몰고온다. 금번 화두가 된 n번방 사건은 돈, 폭력, 위선, 섹스의 우상들이 서로 뒤엉켜 만들어낸 엽기적 범죄다.



n번방, 하나님이 우려하셨던 모습

결국 인간의 우상들이 빚어낸 엽기적 범죄가 n번방 사건이라 할진대,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말씀하신다. 학교 성적을 위해서라면, 욕심과 거짓의 우상을 묵인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가정 아닌가? 이러한 성적위주 사회에서 갈 곳을 잃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폭력과 성적 무질서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아닌가? 기독교 가정의 청소년, 청년들이라고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이 우리 가정의 정신과 삶을 지배할 때, 그 우상이 얼마나 끔찍한 모습을 드러낼 것인지 하나님은 이미 경고하셨던 것이다.



n번방, 기독교 신앙으로 회복시켜야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러한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제시하고 계시지 않을까? 십계명은 이러한 우상숭배의 구체적인 모습을 "하지 말라"고 외칠뿐만 아니라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바로 십계명의 중심을 이루는 제4, 제5계명을 통해서다. 십계명의 겉을 감싸고 있는 금지의 계명과 달리 십계명의 중심에 위치한 두 계명은 "…하라"는 긍정적 계명이다. 내용의 핵심은 존중과 소통이다. 제 4계명은 주님의 날(안식일)의 존중을, 제5계명은 가정(부모)의 존중(소통)을 다루고 있다.

제4계명은 육일 동안 자신을 위해 열심히 생활하되, 칠일째인 주의 날엔 육일 동안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주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가정을 향한 자유 선언이다. 우리는 육일 동안 세상에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지만, 제칠일엔 그러한 치열함 속에서 자유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것은 명령으로 그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욕심의 망상, 경쟁의 스트레스, 거짓의 현실, 성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나 참된 안식, 참된 생명, 참된 행복을 약속하신다. n번방과 같은 범죄는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우상의 지배 아래서 자유의 통로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왜곡되고 변태적인 행위다. 기독교 가정은 신앙이 자신을 속박하는 규범이나 의무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자유를 드러내는 가능성이자 약속임을 가르쳐야 한다. 주일은 새로움을 향해 꿈을 꾸는 날이다.

따라서 기독교 가정에서 이런 시도를 해보면 좋겠다. 주일엔 온 가족이 육일 동안 하던 것을 멈추는 것이다. 하루 종일이 힘들다면 한두시간 만이라도 시도해보자. 아버지는 직장의 걱정을 멈추도록 하자. 주부들은 집안 일을 멈추도록 하자. 학생들은 공부 걱정이나 스마트폰 사용을 멈추도록 하자. 이제 뭘 해야할까를 고민하도록 하자. 그리고 그 무엇인가를 각자, 또는 함께 시도해보자.

제5계명은 가정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5계명은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 아니라 부모가 존중받을 수 있는 가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모의 책임과 소통능력에 대한 약속이다. 기독교 가정은 가족 간 소통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모는 먼저 자녀에 대해 제대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부모는 우리 자녀를 정말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녀모습에 주목하자(지각능력). 둘째, 소통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말하는 기술을 익히도록 하자. 직설적으로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말자. 귀에 명확하게 들린다고 마음에도 들리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생각해보자. 자녀들이 부모의 실수를 사실 그대로 지적한다고 하면 부모는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예수께서 하셨듯이 비유를 통해 우회적으로 소통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자. 셋째, 가정은 자신을 개방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자. 생각보다 가족끼리 솔직하지 못한 것이 우리 가정의 현실이다. 자신의 실수를 먼저 인정하고 고백하는 습관을 부모가 먼저 보여준다면 자녀들도 자신을 개방할 것이다.

고원석 교수/장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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