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수렁 넘어서기

[ 기독교문학읽기 ] (17)이어령의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김수중 교수
2020년 04월 15일(수) 10:00
"벼랑 끝에서 새해를 맞습니다/ 덕담 대신 날개를 주소서/ 어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소리를 내어 서로 격려하고/ 선두의 자리를 바꾸어가며/ 대열을 이끌어 간다는 저 신비한 기러기처럼/ 우리 모두를 날게 하소서"

올해 벽두에 '새해 기도문'을 이렇게 시로 표현한 이어령(1934~ ) 교수는 인생들을 향해 기러기의 나는 법을 알려준다.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예언할 수는 없었지만, 마치 광야에서 새의 자유와 꽃의 영광을 말씀하신 그리스도의 비유를 따르고 있는 듯하다. 이어령 교수의 지성 이야기는 낙타와 양, 비둘기와 까마귀, 포도와 빵이 서로 생명의 관계로 살아나며 화려한 수사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힘이 있다. 암 투병 중인 저자가 고난을 극복하고 영성으로 이 암울한 시대를 밝혀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지성의 상징으로 인식되던 이어령 교수가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컸다. 특히 지성의 우월성을 내세우던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믿음의 길을 택한 그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성으로 성경을 새롭게 읽은 그는 예수님의 수사학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조용히 들려주는 것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문화적 수렁을 넘어서야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신념의 결과였다. 그는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는 저술을 통해 영성의 크리스천이 되었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 책의 개정 신판이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2017년 간행)이다. 이전에 쓴 글을 다시 돌아보지 않던 저자가 생각을 바꾸어 새로 읽고 보완했다는 특별한 책이다. 세례 10주년의 의미도 함께 담았다고 하니, 이 책은 그의 믿음과 영성을 함축한 결실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예수님이 하늘나라의 것을 땅에 사는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그 상황과 배경을 이해해야만 예수님의 수사학에 접근할 수 있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아직도 우리가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한 채 세상의 것으로 눈이 어두워져 있음을 안타깝게 여기는 저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성경에서 '빵'이 '떡'으로 번역된 것과, '밥'으로 번역되지 않은 까닭이 저자가 개정판을 내게 된 이유라고 하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서 발생하는 의문이 곧 문화와 역사가 다름을 파악할 지성이 되고, 그 언어의 장벽과 역사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는 영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현대문명이라는 지성의 산물이 기도의 영성과 결합하는 모양을 이렇게 그려냈다. 친구와 말하고 싶을 때 그의 아이디만 알면 접속할 수 있듯, 기도를 드릴 때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믿음으로 성령의 공간에 접속한다. 아이디는 주 예수, 암호는 할렐루야와 아멘, 저 영원한 빛과 소리에 접속하기 위해 손을 모으는 것, 이것이 지성과 영성의 조화가 잔잔히 마음에 와닿는 순간이 된다.

저자는 십자가가 기독교의 마지막 상징이며, 수직과 수평이 모순으로 만나는 접점, 시간과 공간의 만남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그리고 '십자가'라는 믿음의 시로써 글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하나의 절이 끝날 때마다 그 내용을 영성으로 압축한 시를 썼으며, 이 시도 그의 의문과 믿음을 함께 묶은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십자가가 있지만/ 우리가 찾는 것은 오직 하나만의 십자가/ 계절의 비바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도시의 먼지, 소음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러나 하나의 십자가가 있다// 피 묻은 형틀이, 태양이 다시 솟아오르듯/ 빛으로 살아나 어둠을 불사르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십자가가 있다/ 땅과 하늘이 만나는 자리/ 생명의 싹이 움트는 이 세상 십자가는/ 단 하나밖에 없다"



김수중 교수/조선대 명예·빛누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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