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혼잡

[ 논설위원칼럼 ]

강성효 목사
2020년 04월 06일(월) 00:00
말하며 사는 동물이 말하기가 어렵다. 역사를 통하여 언어는 그 시대와 사회적 환경을 따라 새로운 조어가 생기기도하고 퇴화하기도 했다. 때로는 동일한 용어가 의미를 달리 쓰이기도 하고 두 단어가 축약 또는 분리되어 쓰이기도 했다. 그럴 경우라도 언어의 유통 환경이 느슨하고 변화 속도가 자연스러워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언어의 변화되는 과정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어 당혹스러움을 느끼지 못하였다.

현대 사회가 얼마나 빨리 변화하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첨단 전자제품의 경우 는 속도전이다. 일등은 시장에서 살아남지만 이등은 사라진다. 지식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한 대학교수의 말을 빌리면 신입생에게 가르친 지식이 그들이 졸업할 즈음이면 새로운 지식으로 대체된다고 하였다, 그러니 언어도 그만큼 변화가 빠르고 다양한 용어들이 생성 소멸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지식이나 상품의 대량 생산, 유통의 빠른 속도와 다양성, 사회 구조의 다변화 복잡화에 따른 자연적 언어의 변화라면 다소 어렵더라도 당연히 소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근자의 언어 혼잡 양상을 보면 다분히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목적이나 취향에 바탕 한 억지스럽고 유희적인 면이 강하다. 혼잡을 주도하는 주체들이 누구인지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들이 누구인가? 첫째는 대중 매체이며, 둘째는 연예인들이다. 이들의 영향력과 파급 속도는 하루면 지구촌을 덮는다. 특히 대중 매체 중에도 TV의 전횡은 심각하여 자기들만의 선명성 내지는 존재감과 그에 따른 반사적 이익을 위하여 공중매체로서의 공공성과 공익성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실례로 최근 유행하는 유희적인 낯선 말들을 살펴보면, △넘사벽 :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말잇못 : 말을 잇지 못함 △지못미 :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함 △하나도 없다 : 1도 없다 △가즈아 : 가자의 늘인 말 △개무시 △개고생 △금수저 △은수저 △나무수저 △흙수저 △귀요미 : 귀염이 △헐 : 놀랍다는 의미 △졸혼 : 결혼 생활을 졸업한다는 의미로 이혼은 하지 않지만 각자 의무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감 등과, 국적이 불분명한 말들로는 △득템 : 좋은 물건을 얻다 △님비(NIMBY) : Not In My Back Yard의 앞 글자만 모은 말(혐오시설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는 들어올 수 없다는 이기적 태도)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한 번 뿐인 인생,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 △워라밸 : 일(워크 Work) 삶(라이프 Life) 균형(밸런스 Balance) (일과 생활의 균형 있는 삶. 저녁이 있는 삶) △셀럽(Celebrity) :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가 아니어도 사회 각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 △츤데레 : 겉으로는 쌀쌀하나 속정이 깊은 사람 △에지(edge) : 개성 있고 멋진 등이 있다. 실로 바벨탑 사건 이후 최대의 언어 혼잡시대가 아닌가?

목회자는 말로 사는 사람이다. 시대를 읽고 교회의 성도들 특히 청소년들과 소통하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알아야 대화에 참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순화되지 못한 저속한 언어, 말초적 감성이나 자극하는 유희적 언어들을 극복하고 사람만이 지닌 아름다운 정신과 영혼의 노래를 담아낼 새로운 언어들을 창출하고 확산시킬 의무 또한 이들에게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할 강단 언어의 형편은 어떤가? 무거운 마음으로 거듭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강성효 목사/영주노회 장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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