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수월성보다 보편적 사랑의 지경을

[ 4인4색 ] 기술발전과 하나님의 창조(4)

최갑홍 장로
2020년 04월 08일(수) 10:06
기술은 수월성(秀越性)을 통해 개발되고 보편성(普遍性)을 통해 상용화된다. 수월성의 특성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보편성의 특성은 기존의 것이 더 널리 사용되기를 추구한다. 수월성의 특성을 기술혁신에 접목하는 정책이 특허 정책이라면, 보편성의 특성을 기술 상용화에 응용하는 정책이 표준화 정책이다. 특허 정책은 늘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찾도록 유도하여 인간의 창의력을 촉진하고, 표준화 정책은 기존의 것을 오래 보존(keeping things)하여 인간 삶의 효율성을 향상시킨다.

지구촌 사회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우수한 기술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선택을 받는 기술이 살아남는다. 기술적으로 우수했던 소니의 비디오 방식(베타막스)은 콘텐츠가 많은 마쓰시다 계열(VHS)에 뒤져 시장에서 사라졌다. 화려한 글자체와 그래픽 기능이 뛰어난 애플사의 개인용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의 호환성이 많은 IBM 컴퓨터에 비해 시장 점유율이 낮다. 스마트폰 경쟁에서도 애플사는 수월성 전략을 추구하지만 구글사는 보편성 전략을 추구하여 시장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이러한 교훈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에게 큰 교훈으로 작동하고 있다. GAFA(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기업들이 수월성 전략으로 개발한 기술을 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 과감히 개방하고 있다. 개방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와 더 많은 콘텐츠 개발자, 더 넓은 네트워크의 형성이 곧 비즈니스의 성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선택된 플랫폼이 곧 보편성의 통로가 되는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s)으로 정착되어 시장을 지배하게 될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기술 혁신의 최후 전장(戰場)은 표준을 정하는 과정이다. 소비자가 선택한 표준은 승자 독식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표준화된 기술이 시장의 승자가 된다. 제1·2차 산업혁명이 공급자 위주의 표준화 전략이었다면 제3·4차 산업혁명은 사용자 위주의 시장 표준화 전략이다. 기술의 본질은 변화가 없지만 기술혁신의 결과에 대한 선택권은 바뀌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은 몇몇 뛰어난 이들을 통해서 기술 혁신으로 진전되지만 혁신된 결과의 상용화 성패는 보통 사람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복음의 본질은 변함이 없어야 하지만 복음 전파의 시대적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가 건물 안에 갇혀있던 교회를 가정과 이웃으로 확장하고, 예배당 안에 있던 복음을 삶의 현장에서 말씀으로 살아내게 하고 있다. 마틴 루터의 영적 수월성은 종교 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지만, 요하네스 구텐베르그의 인쇄기는 성직자의 손에 있던 성경을 농부와 상인의 손에 이르게 하는 보편성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지적 수월성의 바벨탑을 쌓기보다 보편적 사랑의 지경을 넓혀나가는 복음의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최갑홍 장로/성균관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과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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