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은 출석교인

[ 목양칼럼 ]

임영숙 목사
2020년 04월 03일(금) 00:00
필자가 개척을 한 후 3개월이 지난 때 일이다.

"야야, 너그 있는데 거기가 어디고, 한 시간이나 헤매도 못 찾겠다." 헉헉 거리며 들려오는 전화 음성이었다. "아이고 어머니, 전화하시지? 무슨 일입니까?" "내, 있제, 너그 아버지하고 너그 교회 갈라고 찾아왔는데 당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우리 좀 데리러 오너라." 할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시간을 보니 예배 15분 전, 마음이 너무 다급했다. 달려가 보니 땀을 뻘뻘 흘리시며 두 분이 손잡고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눈물이 펑펑 났다. 예배시간이 다 되어 정신없이 아버지 어머니를 모시고, 성전으로 올라와서 예배를 드렸다. 감격과 감사가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눈물로 드렸다. 교회에서 예배는 처음 드리는지라 필자가 말씀을 전할 때마다 "그래 맞지, 옳지, 맞는 말이지"라고 하시면서 옆 사람을 의식하지도 않고 예배를 드리셨다. 이 모습을 본 모든 성도들도 함께 울며 예배를 드렸다. 꿈인 것만 같았다. 일평생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심정이었다.

필자는 믿지 않는 가정에서 오빠 등에 업혀 교회를 다니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 목회자가 되고 가장 큰 숙제와 고민은 '내 부모와 형제자매가 교회를 다니지 않는데 강단에서 무슨 설교를 하며, 전도를 하라고 외칠까?'였다. 이것이 늘 걱정이고 짐이고 첫 번째 기도제목이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 내가 목회할 때 이 문제만큼은 반드시 해결해 주세요. 그래야 목회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면서 하나님께 원망 아닌 원망을 하기도 했다.

뒤늦은 출석교인, 귀한 한 가정을 선물로 주셨다.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새가족 교육도 받고 세례 교인이 되었고, 개척 교회인 예원교회 모범 교인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데이, 내가 죽더라고 교회가 큰 걸 보고 죽어야 할텐데 … 내가 우리 교회 크는 것 못보고 죽을 것 같다. 니가 안스러워 어떻게 내가 눈을 감겠노. 내가 조금만 일찍 교회를 다녔었어도 니가 결혼을 하고, 가족이 있었으면 그래도 좀 안심이 되고 나을텐데, 미안하데이"라고 하시며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필자의 손을 잡으며 미안해 하셨다. 아버지는 주일 낮예배를 정성껏 드리고 쓰러지셨다. 청년이 아버지를 등에 업고는 응급실로 달려갔다. "목사님, 아버님이 암이래요. 3개월 정도 남았대요."

너무나 당황스럽고 충격이 컸다. 고통 가운데서도 딸을 걱정 하시던 뒤늦은 출석 교인은 9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병원에 있을 동안 찬송가 563장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를 3000천 번 정도 부른 것 같다. 그렇게도 그 찬송을 좋아 하셨던 그분이 떠나고, 남아 있는 뒤늦은 교인 한분은 교회에서 명예권사가 되었고, 교회의 어머니로서 성도들에게 늘 맛있고 구수한 된장국을 끓여 주일 점심을 대접했다. 늦게 신앙생활을 시작한 교인 한 분도 늘 딸을 걱정하며, '오늘은 뭐 묵나? 아픈 데는 없나? 오늘, OO교인 집은 가봤나?'를 확인하셨다. 어머니 역시 그렇게 교회에 봉사하고 딸을 걱정하다가 90세 되던 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미 나보다 나를, 이미 나보다 내 형편을 더 잘 아시는 주님이 하셨다. 목회 35년 중에 가장 감사한 것 중 하나가 뒤늦은 교인을 맞고, 하나님 곁으로 보낸 것이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신 말씀이 더욱 생각난다.

임영숙 목사/예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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