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가 있어야 길이 열린다

[ 가정예배 ] 2020년 3월 30일 드리는 가정예배

이덕만 목사
2020년 03월 30일(월) 00:10
이덕만 목사
▶본문 : 요한복음 15장 5~7절

▶찬송 : 380장



전래동화 중 콩쥐와 팥쥐 이야기에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장면을 너무 안타깝게 읽었던 것이 기억난다. 목회 30년을 바라보게 되는 시점에 느끼는 것은, 인생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보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생각이 든다. 내 목회 인생에서 은혜의 물 단지에 물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두꺼비가 콩쥐의 독을 막아준 것처럼 누군가 밑 빠진 자리를 막아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회 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그 외 여러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그 누군가가 바로 예수님의 은혜이며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축복의 환경에 익숙해져 감사와 기쁨을 잃어버린 한국교회의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결단을 촉구하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큰 은혜를 입고 살았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 큰 은혜에 마땅히 드려야 할 진정한 감사를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드릴 수 있고, 목이 터져라 찬양을 부를 수 있고,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 이것들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은혜 중에 은혜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신앙의 시작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봤다. 그 때 문득 떠오른 자리가 바로 성지순례 때 들렀던 갈릴리 호숫가에 위치한 베드로 수위권 교회였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장소, 사실상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다시 사도되게 하신 그 장소(요21:15~17)였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던 베드로가 다시 사도가 되어 부활의 증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무조건적인 용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교회당 안에 들어가 묵상하는 중 그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큼직한 바위는 베드로의 인성이 아닌, 조약돌보다 더 나약한 베드로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은혜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베드로를 다시 부르신 것은 베드로와 그 뒤를 따르는 우리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베드로는 주님의 절대적 은혜가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사람이다.

한국교회도 마찬가지다. 선교역사 130년 만에 우리는 맨 처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이 땅에서 느꼈던 암담함 가운데 다시 서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바위같이 흔들릴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국교회에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교회의 번영이 우리의 노력으로 만든 열매라고 착각하는 교만함을 회개해야 한다. 주님은 다시 한 번 밑 빠진 독 같은 한국교회의 신앙의 현장에 그 구멍을 온전히 막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은 내 노력으로 성공하였다는 번영주의 공식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일 수도 있다. 한국교회가 나의 노력이 아닌 오직 은혜로 다시 일어서는 은혜의 공동체로 세워지길 기도한다.



오늘의기도

하나님 아버지 하루 속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이 멈추고, 온 세계 교회들이 평강 안에서 모여 기쁨으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덕만 목사/행신임마누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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