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이 주는 유익

[ 논설위원칼럼 ]

리종빈 목사
2020년 03월 16일(월) 00:00
'코로나19'가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 있으며 일상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학교에 가야 할 학생들이 집에 있어야 하고, 부모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쉬어야 하고, 출하를 앞둔 농산물을 갈아엎어야 하고, 월세를 내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은 파산을 생각해야 하고.

교회의 상황은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예배당에서 예배를 못 드린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데 고민할 여유도 없이 예배당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맞았다. 세상의 어느 기관이나 단체 보다 친밀감(교제)을 강조한 교회 공동체가 이제는 거리를 두는 것과 모이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되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규모에 관계없이 정말 부지런하게 움직여 왔다. 공적인 예배는 물론이려니와 이런저런 신앙훈련에서 심지어 취미활동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모이다시피 했는데 갑자가 이 모든 것이 멈춰 섰다. 이로 인해 오히려 현실적으로 시간이 많이 주어졌는데 무엇을 어떻게 할지를 몰라 하고 있다.

많은 것을 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한국사회는 밤낮 없이 일하는 것이 보편화된 사회다. 좋은 말로는 부지런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다 보니 근본을 잊은 채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뛰어다니기에만 바쁘다. 교회도 이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사데교회의 책망이 떠오른다. 물질의 넉넉함과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열정을 가지고 바쁘게 사역을 했지만 주님으로부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책망을 받았다. 부지런함이 책망이 된 사실이 놀랍다. 부지런하기만 했지 그 행동이 주님의 마음과 일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행위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어떤 가치관을 가진 부지런함이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부지런함을 스스로 멈추기가 어려웠는데 멈출 수밖에 없는 현실의 상황 속에서 지금까지 우리의 부지런함이 무엇에 근거하였는지를 살펴보면 좋겠다. 우리 각자는 혹 자신의 의를 드러내는 부지런함, 명예와 권력을 위한 부지런함이 아니었는지를 살피고, 교회 공동체는 교회 자체의 명성이나 외형적 확장(부흥)을 위한 부지런함이 아니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가 그동안 너무 의존적 신앙에 길들여지지 않았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언제든지 예배당에 오기만 하면 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신앙의 필요부분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통로가 막힘으로 많은 성도들이 불안 해 한다. 타자로부터 공급받는데 익숙한 신앙이다 보니 이런 상황에서 자력으로 헤쳐 나갈 힘이 전혀 기러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예배당에 못가는 것만으로도 답답해 하는데 앞으로 성경책을 손에 쥐지 못할 상황이 올는지 누가 알겠는가? 그때는 이보다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동안 부지런함의 미덕만을 내세우고 그 부지런함이 혹 수평적 관계에 너무 치우친 면이 없지 않다면 이 멈춤의 기간에 약해진 수직적 관계(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혼자 부르는 찬양, 혼자 드리는 깊은 기도, 혼자 묵상하는 말씀, 이런 것은 예배당이 없어도 성경책이 없어도 가능하지 않은가?

또한 타자(주로 목회자)에 의존한 신앙이 편할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 도움의 통로가 끊어지면 속수무책이 됨을 실감하고 하고 있다. 이제는 의존적이 아닌 스스로 신앙을 성숙시켜나가는 훈련을 생각해야 한다. 친밀감이 아닌 거리가 필요한 이때 우리는 역으로 사람과의 거리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더 깊게 해야 한다.

리종빈 목사/광주벧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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