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들려오는 소리

[ 특별기고 ] 코로나19가 우리 가정 곁에 바짝 다가왔을 때 : 선교적 단상

박보경 교수
2020년 03월 12일(목) 15:24
지난 2월 대구에 살고 계신 노령의 어머니를 찾아갔다가 뜻하지 않게 발이 묶여 코로나19 확산의 중심지에서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 가족과 함께한 한 신학자의 이야기가 본보에 접수됐다. 현재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가족의 어려움, 주일 가정예배의 소중함, 삶과 죽음의 위기에 직면했을 때 기독교인의 대응, 코로나라는 강도를 만나 육체도 마음도 깊은 슬픔 속에 있는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법 등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겼다.

<편집자 주>




#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가정에 바짝 다가왔을 때: 대구에서의 나의 경험 이야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대구를 강타하여 전국 메스컴이 온 한국을 시끄럽게 할 때 나는 우연히 대구에 있었다. 대구에 사시는 92세의 어머니의 상태가 걱정되어 가족회의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고 대구를 내려간 상태였다. 그런데 대구에 도착해서 하루 만에 코로나 바이러스 집단 발병이 발발했다. 가족들은 매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도대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건물폐쇄와 여기저기서 새로운 확진자들의 이야기들이 들려오면서 도시가 스산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혹시라도 어머니에게 이 몹쓸 전염병이 옮기게 되면 그 결과는 너무 자명한 것이기에 매일 노심초사했다. 집을 드나들던 이웃 할머니들도 사라져버렸고, 가족들도 전화만 할뿐이었다. 자가용 운전이 용이하지 않은 언니들은 택시 타기도 두려워 집밖을 나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가까운 작은 마트 조차도 마스크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했다. 확진자가 한번 지나가기라도 하면 무조건 폐쇄하는 상황이었기에, 경제적 손실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모든 예배는 취소되고, 도시 전체가 완전히 멈추어 선 것 같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느 날 감기 증상으로 아프기 시작했다. 감기 증상이 시작되자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대구행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괴로움과 당황스러움이 엄습해왔다. 당시 할 수 있는 것은 자가 격리 뿐이었다. 아무리 소독제를 여기저기 뿌리고 마스크를 끼고 식사를 따로 한다고 해도, 같은 집에 함께 지내면서 어떻게 완벽한 격리를 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니 참으로 막막했다. 서울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는데, 매일 오던 요양보호사도 내가 감기증상을 보이자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바로 보건소에 연락했지만, 대구에서는 이런 증상환자들이 너무 많아 검사대상자의 우선권에서 밀리니 그냥 상태를 지켜보면서 며칠을 기다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러다가 증상이 더 심해지면 그때 바로 선별진료소로 가서 입원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폐렴으로 진행돼야 병원에 갈 수 있었다. 대구는 확진자가 많아 자택에서 기다리며, 스스로 나으면 다행이고, 혹시 병세가 악화되면 그때서야 병원에 갈 수 있다니 정말 기가 막힌 지시였다. 결국 검사도 못해보고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잘 먹고 잘 쉬고 나의 면역력이 스스로를 치료하도록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고, 그사이 다른 이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가 격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극도의 스트레스가 우리 가정을 이렇게 엄습했다.

그러던 중, 며칠 전부터 계속 감기몸살을 앓던 언니가 점점 더 심해진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언니의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되었고, 결국 일어나지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설마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되고야 말았다. 뉴스로만 듣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가정에도 이렇게 갑자기 침입한 것이다.

언니는 확진을 받았으면서도 워낙 많은 환자들이 입원을 기다리고 있던 터라, 자택에서 자가 격리하면서 대기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청에 연락했으나, 계속 기다려 달라는 응답뿐이었다. 환자의 호흡은 점점 더 가빠지고, 의식도 조금씩 약해지는데, 더군다나 일주일 이상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방안에 계속 누워만 있는 언니를 지켜보던 형부는 눈물로 관계자들에게 호소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죽더라도 링거 한번 맞고 죽게 해주셔야 지요. 치료 한번 못 받고 죽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구급차에는 산소호흡기가 있지 않습니까? 그거라도 받게 해주세요."

119로 구급차를 불렀으나 이송할 병원을 찾지 못해 결국 구급대원은 눈물을 머금고 아픈 환자를 다시 내려놓고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날 저녁 상태가 위급하여 다시 119 구급차를 불렀고, 구급차 안의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병상이 마련되기를 바라면서 병원 앞에서 마냥 기다리던 몇 시간을 보내던 형부는 구급대원에게 병상이 마련될 때까지 차에서 내리지 않도록 해달라고 애걸하는 상황이 됐다. 한 번도 본적 없는 구급대원은 "걱정 마세요. 밤새 계속 계셔도 됩니다"라고 안심을 시켜주며,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으로 강도만난 자 같은 언니의 이웃이 되어주었다.

무작정 대기하고 있던 중 몇 시간 후 기적같이 병상이 마련되었다. 병원에 입원한 후 겨우 안심을 한 것도 잠시,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미 상태가 너무 나빠졌으니 각오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우리 가족은 다시 하늘이 무너졌다. 지금도 언니는 병원에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며칠 만에 일어났고, 대구는 이런 환자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은 갑작스럽게 변해버린 일상 때문에 총체적인 충격 속에 어찌할 바를 몰라 비통해 하고 있다.


# 믿음의 동역자들과 나누고픈 이야기 : 선교적 단상

지난 몇 주간의 경험은 나에게 삶과 죽음의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리스도인으로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특히 3주간 대구에서 갇혀 있다시피 한 경험 속에서 나 자신이 코로나의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타인에게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내 안에 일어나는 상념들을 지켜보면서, 이 작은 경험을 믿음의 동역자 들에게 몇 가지로 나누고자 한다.

첫째로, 우리는 공포감 없는 경각심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난 2일 서울지역으로 와서 느낀 것은 대구의 심각한 상황이 멀리 떨어진 이야기로만 들려진다는 것이다. 불과 3시간 떨어진 대구에서의 경험이 실감나게 전달되지 못한 채, 경각심이 다소 둔감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서울지역도 집단 감염이 시작되는 우려가 있다고 한다. 지나친 공포감도 문제이지만, 그래도 지금은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할 때다. 부디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모임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결국 피해는 노약자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질 것이며 그들은 나의 가족이며 이웃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보호하는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 것이다.

둘째로, 지금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상예배를 드리면서,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와 내가 영상으로 들려오는 목사님의 찬송소리와 함께 찬양을 할 때, 그리고 장로님의 기도에 맞추어 함께 눈을 감고 기도할 때, 목사님의 설교를 경청하며 '아멘, 아멘' 할 때, 그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은혜를 경험했다. 이렇게 절절하게 말씀이 다가온 적이 얼마만인지.

또한 언니의 상태가 위급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도움의 요청을 여기저기 청할 때마다 함께 아파하며 방법을 찾아주신 많은 분들이 있음에 감사했다. 나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에 그나마 이렇게 이만하게 견디고 있는 것이다. 보내온 사랑과 격려로 인해 받은 위로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어려운 때 일수록 도움의 손길을 얻을 수 있는 이웃과 동료가 있어서 감사한 일이다. 이 감사의 고백이 오히려 마음의 면역력을 높여줄 것이다.

셋째로, 고난당하는 이웃을 돌보며 감싸 안아야 겠다. 우리 주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갑작스럽게 강도 만난 자 같이 되어버린 분들이 많이 있다.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확진자가 되어 입원을 했다고 해도 격리조치가 일어나기 때문에 혹시라도 회복되지 않을 경우 가족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참으로 갑작스럽고 비통한 이별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강도 만난 자들이다. 난데없이 병마를 만나 심령까지도 크게 다쳐 깊은 슬픔 속에 있는 자들이다. 이럴 때 이웃을 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실천은 실제 가장 강력한 복음증거의 원동력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더 바르게 행동하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고통받는 자들을 감싸 안을 때, 그때가 바로 주님의 복음이 우리들의 삶으로 전달되는 순간이다.

박보경 교수 / 장신대·선교학

※ 다행히 바이러스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온 필자는 대구에서의 약 3주간 생활을 마치고 수도권의 집으로 돌아와 자가 격리를 하고 있다. 박보경 교수는 "고민 끝에 대구에서의 짧은 경험을 글로 나눈다"며, "모든 국민들이 하루빨리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주님께 간절히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사경을 헤매던 박 교수의 언니는 3월 14일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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