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 가정예배 ] 2020년 3월 24일 드리는 가정예배

이영희 목사
2020년 03월 24일(화) 00:10
이영희 목사
▶본문 : 갈라디아서 6장 17절

▶찬송 : 147장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의 고백이다. 본문 17절 하반절에 나오는 '흔적'이란 단어는 헬라어로 '스티그마'이다. '흔적'이란 말은 원래 쇠 인장을 불에 달궈 자기 소유의 짐승에게 찍는 화인을 말한다. 고대 헬라 문화권이나 로마 문화권에서는 동물 뿐 아니라 노예나 포로의 이마나 어깨에 '스티그마'를 찍었다.

그러면 바울이 자기 몸에 예수의 '스티그마'를 가졌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성서주석가들 가운데는 사도 바울이 어쩌면 실제로 '예수'라고 새긴 화인을 몸에 찍었을 것이 라고도 한다. 중세 수도사 가운데는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스티그마'는 자기의 소유라는 사실을 분명히 표시하기 위해 찍는 낙관이다. 그림이나 글씨에도 '스티그마'가 있다. 낙인을 보고 박수근의 그림, 천경자의 그림인 줄 안다. 바울이 자기 몸에 '스티그마'를 지녔다는 말은 내가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웠다는 말이다. 예수의 흔적이란 말은 십자가의 흔적이란 말과 같은 뜻이다.

성 프랜시스의 전기를 보면, 어느 날 높은 산에 올라가 고행하며 기도하는데 갑자기 몸에 엄청난 뜨거움과 고통이 임한 후 자기 손발에 성흔이 나타났다고 한다. 프랜시스는 그 체험 후에 자기가 주님의 십자가의 신비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7:22)" 최후심판 때 많은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주님 십자가 앞에서 '스티그마'가 없으면, 고난의 흔적이 없으면 그것은 다 불법이고 가짜이다. 예수의 흔적이란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흔적인데 선지자 노릇하며 호의호식 했던 사람들은 아무런 고난의 흔적이 없었기에 결국 "내게서 떠나라(마7:23)"는 주님의 준엄한 심판의 선고를 받았다.

반면에 바울은 많은 고난 당했다(고후11:23~27). 그에게는 몸에 많은 상처와 흉터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흔적이다.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이 있어야 주님께 속한 사람이고 주님의 제자이다. 고난의 흔적이 없으면 무슨 일을 해도 다 불법이다. 마지막 심판 때 우리 몸에 지닌 십자가의 흔적을 통해 구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기피한다. 십자가의 고난을 보면 달아난다. 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데 도망간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마지막에 기독도는 "나의 이 모든 상처를 주님 앞에 훈장처럼 가져가겠다"고 한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다. 주님의 흔적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이 되길 바라며 남은 생애동안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복된 성도들 되기를 소망한다.



오늘의기도

주님 때문에 얼마나 고난을 당했는지를 돌아보는 사순절이 되게 하셔서 주님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가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영희 목사/하늘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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