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원, 이런 사람을 원한다

[ 3월특집 ] 선거와 교회-<2>21대 국회의원, 이런 사람을 원한다

황홍렬 교수
2020년 03월 09일(월) 09:18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나 직장이나 교회에 가지 못하고 뜻밖의 '가택 연금'에 처하게 되면서 우리는 사회적 격리가 배제와 차별로, 희생양 만들기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문제는 이 사태가 언제 진정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과 그 사회적, 국가적, 세계적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코로나19가 해결되어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를 야생동물로부터 전파된 것으로 보고, 그 원인이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재앙을 초래한 인간의 문명과 탐욕에 있다고 보면서 바이러스의 침입이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총선을 앞둔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태에서 어떤 "시대의 징조"를 읽어내야 할까? 그리고 이런 시대의 징조는 국회의원 선거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할까?

'유엔미래보고서 2040'은 어두운 미래의 모습으로 예상보다 빠른 기후변화와 심각한 국제질병 등을 제시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문명 붕괴 요인으로 환경파괴와 기후변화 등을 제시했다. KAIST는 '대한민국 국가미래전략 2018'부터 '카이스트 미래전략 2020'에 이르기까지 4차산업혁명을 통한 과학기술과 삶의 변화를 전망하면서 각 분야의 미래전략을 제시했다. 그런데 한국의 미래전략을 논하면서 곤혹스러운 것은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라는 글로벌 위기를 대처하되 지속적인 성장을 전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모순이다. 이제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를 외면하고서는 지구생명공동체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2019년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인 그레타 툰베리는 현재를 '기후와 생태계의 비상상황'이라 했다. 일부 신학자들은 2010년을 '기후붕괴의 원년'으로 제시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올바른 가치관과 자세는 무엇일까? 경제(economy)는 집(oikos)과 법(nomos)의 합성어로 하나님의 집(피조물)을 다스리는/살리는 법이다. 생태학(ecology) 역시 경제처럼 집(oikos)을 어원으로 하고 있다. 즉 경제성장을 지향하는 인간의 경제는 피조물을 살리는 법으로서의 큰 경제에 종속되어야 하고, 인간은 피조물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생태계의 경제를 인간의 경제에 종속시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의 경제를 피조물의 경제에 종속시키기를 주장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7위이다. 호주는 석탄 수출이 1위인 국가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기존 경제 패러다임을 고수하다가 산불로 엄청난 피해를 입고 중진국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우리는 호주를 반면교사로 삼아 기후재앙과 생태계 파괴를 심각한 국가적 과제로 삼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정치인을 선택해야 한다.

둘째 생태계 위기는 경제불의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경제정의를 실천하려는 정치인을 국회의원으로 선출해야 한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고 정치적 민주화도 달성한 예외적인 국가이다. 피케티에 의하면 1700년부터 2012년 사이의 전 세계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6%였다. 70년대와 80년대의 고도의 경제성장은 예외적인 사례였다. 경제성장이 소득불평등을 완화했고, 이것이 경제성장에 기여함으로써 중산층이 증가했다. 그러나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경제적 양극화가 확대되고 중산층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소득불평등이 극심해지면 1차세계대전, 1929년 대공황, 2008년 금융시장 붕괴 등 전쟁이나 경제적 파국을 맞는다. 2차세계대전 이후 30년 간 자본주의 황금기를 맞이했다가 1980년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이후 소득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는 세계화와 기술의 진보, 비정규직 노동자 양산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한국경제는 가계가 저축한 것을 기업에 투자해서 이익을 냄으로써 돌아가는 경제가 아니라 기업이 저축한 것을 가계가 대출함으로써 운영되는 거꾸로 체제이다. 가계부채의 급증은 금융시장의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총선에서 선출할 국회의원은 경제정의를 회복하고 한국경제를 바로 세울 사람들이어야 한다.

셋째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4차산업혁명의 명암을 구별하여 경제적·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기술의 발전이 기후재앙과 생태계 파괴를 방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책을 주장하는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넷째 한국전쟁 7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는 해에 치러지는 총선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경제민주화와 남북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비전과 이를 실천할 지혜를 갖춘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청명한 하늘 아래에서 홍수를 준비해야 한다고 외치던 노아의 외침처럼 들릴지 모른다. 총선에 임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가치관과 자세는 교회와 신학교, 우리 자신에게 먼저 요청된다. 기후붕괴, 생태계 파괴, 경제불의, 남북의 분단 등 인류와 피조물의 위기 상황에서 인간의 탐욕과 편리함을 구하며 바벨탑을 쌓는 경제적 인간으로부터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피조물의 신음소리를 듣고 구원과 생명의 방주를 만드는 피조물의 청지기로 회심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3·1운동 기독교 지도자들처럼 민족의 십자가를 이웃종교인들과 함께 지는 사순절이 되기를 기원한다.

황홍렬 교수/부산장신대, 선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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