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성경문자주의가 신천지 등 이단 키웠다"

[ 시론 ] 코로나19 사태와 이단

구춘서 총장
2020년 03월 04일(수) 16:23
지난 2월 27일 신천지 본부 압수수색 요청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고발장 접수를 위해 대검찰청에 들어서는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 관계자들.
이번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상당수가 신천지 집단 소속이다. 우려되는 것은 신천지 신자들의 반복되는 거짓말 때문에 방역 당국이 애를 먹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의 동선, 예배참석 여부, 또 추종자의 명단 제시 등 일체를 거짓으로 일관한다. 필자는 이만희 교주의 두 번 절하는 기자회견도 연출된 거짓 쇼라고 생각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모략이라는 거짓말과 행동으로 기성 교인을 미혹해 성장한 신천지 집단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외국 언론까지 신천지 집단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젠 일반인들도 신천지의 거짓 행태에 대해 알게 됐다. 또 신천지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을 대거 포섭하려 한 정황도 감지된다. 신천지는 반기독교적인 동시에 반사회적, 반윤리적인 집단인 것이다. 이런 집단이 성장하고 득세할 때 전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는 분명하게 목격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의 활동을 어느 교단보다 심각하게 연구하고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이미 10만권 이상 배포한 소책자 '신천지 긴급 경계령'을 통해 신천지가 어떻게 미혹 활동을 하는지 소상히 알렸다. 그럼에도 이런 이단 예방 운동에 교회들의 참여가 너무나 소극적이어서 아쉬움이 많았다. 국가적 혼란이 일어난 후에야 비로소 신천지의 위험성을 체감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교회가 더 일찍 신천지의 위험을 사회에 알리고 또 예방하는 데 힘썼더라면, 지금의 행정력 및 재정적 손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신천지의 문제점을 알리고 대처하는 데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

신천지 추종자는 일단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면 거짓말로 대처하도록 훈련을 받는다. 자신이 신천지 추종자가 아니라고 잡아뗀다. 증거를 들이대면 "지금은 더 이상 신천지 집회에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런 거짓 증언은 가족들 간에도 적용된다. 삼손이 머리카락의 비밀을 들릴라에게 알리면 안 되듯 자신의 신분을 속여야 한다고 훈련받는다. 또 밭에 감추인 보화의 존재를 밝힐 수 없듯 자신이 신천지인 것을 밝히지 않도록 배운다. 이번 이만희 교주의 기자회견에서 진정성을 볼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많은 추종자들이 계속 거짓으로 일관할 것이다. 따라서 당국은 이들을 철저히 불신하고 공권력을 동원해 심도 있는 조사와 대응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이 있다. '왜 신천지 집단을 포함해 여러 이단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추종하는가'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심리학적인 분석과 신학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먼저 사회심리학적으로 살펴보자. 레온 페스틴저가 주창한 '인지부조화 이론'은 '믿음과 현실이 괴리할 때 믿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왜곡하여 받아들인다는 이론'이다. 신천지 교인들은 코로나19의 창궐을 마지막 때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시련으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이들이 자신의 믿음이 잘못됐다며 신천지를 박차고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데 익숙하다. 또 스탠리 밀그림의 '권위와 복종의 이론'도 적용될 수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예일대학에 재직시 나치 치하에서 600만 유대인을 과학, 교통, 통신 등 극도의 효율성을 가지고 살상한 일에 의문을 품었다. 그의 실험은 '일정한 조건에 놓이면 인종, 빈부, 교육,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권위에 복종해 비인간적인 일도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기독교 국가인 독일이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다. 이단에 빠지게 되면 지식, 나이, 빈부의 격차를 막론해 누구나 부모와 가족을 속이고 정부를 따돌리는 반인륜적 행위를 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신학적 문제다. 우리 교회가 이들 이단의 온상지가 된 것은 신학적 이슈다. 신천지는 기성 교인을 포섭한다. 또 신천지는 노인에게 관심이 없다. 이들은 젊은이들에게만 관심하고 집중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교회가 이들에게 추종자를 내 보내는 모판이 됐는가? 필자는 한국교회가 건전한 신학적 사고를 교인들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한다. 성경문자주의(聖經 文字主義)가 그것이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칼빈의 신학적 입장이 아니다. 이는 종교개혁가들의 성경관도 아니다. 성경문자주의는 현대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는 가운데 등장한 것이다. 근본주의가 그것이다. 한국교회의 강단에선 대체로 근본주의를 토대로 성경의 문자적 권위를 강조한다. 성경 말씀에 무조건 문자 그대로 아멘하며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유독 우리나라에만 강하게 활동하는 이단들이 탄생했다. 성경의 문자대로 안식일을 지키자 하고 유월절을 지키자고 하면 뭐라 할 것인가? 성경에 안 나오는 크리스마스 절기는 왜 지키는가?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들은 우리 교회의 이런 성경문자주의를 교묘하게 자신들의 교리를 입증하는 데 활용한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교회에서 경험하지 못한 성경을 해석하고 공부하고 토론하는 일을 허용한다. 이들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기성교회를 조롱하고 폄훼한다. 교회가 문자주의를 강조할수록 이단들의 공세는 더 거세질 것이다. 미국에서 기독교를 공격한 흑인 이슬람은 성경의 "우리의 죄를 눈처럼 희게 해 달라"는 말씀을 문제시하며 기독교인들을 미혹해 세력을 키웠다고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여러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가정 해체가 본격적으로 일어나면서 다음세대가 유입되지 않고 있다. 교회의 이미지 추락은 더 심각하다. 현재 한국교회의 상태는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난 중세와 비슷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지도자들, 예배를 바르게 집례할 수 없을 정도의 사제들은 당시 시민들의 조롱거리였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부 목회자들의 이미지는 중세 때 사제들 못지않다. 무인가 신학교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위 무자격 성직자들은 교육부의 통제나 교단의 통제도 받지 않는다. 이들은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건전한 교회의 이미지를 깎아 먹고 있다. 종교의 자유라는 명목 아래 이들은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 오래전 짐 존스의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은 이런 사각지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런 이단의 발호가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하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이단의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다수의 목회자들은 이단 예방과 대처에 무관심하거나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고소당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이들의 거친 행동엔 몸을 움츠린다. '교회가 순교자적인 자세로 이단을 대적해야 할 때'라는 것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의 중요한 교훈이다.

구춘서 총장 / 한일장신대학교·전 총회 이단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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