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과 인성의 교직(交織), 피에타

[ 4인4색 ]

김철교 장로
2020년 03월 04일(수) 10:00
미리내성지의 피에타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고통 받은 아들이, 죽음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애처로운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세상 어머니' 마리아를 작품에 담고 있다. 죽은 사람이 천국으로 갔을 것으로 확신하는 장례식장에서도, 기쁨의 축제마당이 아니라 슬픔의 현장이 되고 있는 것은,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도 통곡하고 눈물을 흘리셨다(히 5:7).

미켈란젤로는 24세 때 성베드로대성당에 있는 피에타를 시작으로, 두오모성당 피에타, 팔레스티나 피에타, 론다니니 피에타 등 4개의 피에타를 조각하였다. 회화에서는 들라크루아(1798~1803)가 그린 피에타가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를 모작한 고흐(1853~1890)의 피에타가 네덜란드 고흐미술관에 있다. 피카소가 파시스트 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그림 '게르니카'에는 아들을 안고 고통으로 울부짖는 피에타가 등장한다.

필자가 생폴드방스에 있는 마그미술관에서 본 피에타는, 해골 모습의 얼굴을 가진 성모 마리아가, 예수님 대신, 오른 손에 인간의 뇌를 들고 축 처져 있는 조각가를 안고 있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신성모독이 아닐까 싶었는데 해설을 읽어 보니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자 메시아인 예수의 죽음을 애통하는 성모의 슬픔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벨기에 작가인 얀 파브르(Jan Favre, 1958~)가 대리석에 조각한 '자비로운 꿈-피에타 IV'라는 작품이다.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피에타를 주제로 한 그림과 조각상들이 있다.

이탈리아어의 의미로 '연민'인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대표적인 것이지만, 로뎅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안고 애통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조각했고, 우리나라 안성에 있는 미리내 성지의 피에타는,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김대건 신부를 안고 있는 조각이다.

신실한 믿음을 가진 로뎅의 조각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머리를 풀어 헤치고 거의 나신으로 부둥켜안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시달리다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고 열렬한 추종자가 된 여인으로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고 머리채로 씻었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인 것을 알고 있지만, 사랑하던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간적인 감정도 담겨있다. 한때 로뎅의 비서였던 릴케는 로뎅의 조각을 보고 막달라 마리아의 시각으로 쓴 시 '피에타'에서 "··· 내 드리운 머리카락 속에 당황하여 서 있던 모습/ 마치 가시덤불 속에 하얀 야수 같았지요./··· 당신의 심장은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갈 수 있군요/ 어찌 저만 들어갈 수는 없었던가요.···"라고 묘사함으로써, 마리아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란, 인간적인 세속적 사랑과, 하나님 아들에 대한 경건한 사랑이 교직되어 있음을 본다.

원래 사랑의 속성은 그렇다. 에로스적인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 필로스적인 사랑, 이 모두가 서로 겹쳐 있는 것이 우리들의 사랑이 아닐까 싶다. 성모 마리아도 '성자 예수'라는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에서 죽은 '아들 예수'에 대한 슬픔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김철교 장로/배재대학교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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