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작은자운동 45년'

[ 여전도회 ] 작은자운동의 사회복지 기여 3

김중호 소장
2020년 01월 30일(목) 07:31
(3) 1991년~2001년 작은자복지선교회

1) 작은자복지선교회 창립

1990년 12월 3일 '작은자복지선교회 창립준비위원회'를 거쳐 1991년 5월 13일 '작은자복지선교회'(The Walfare and Mission Society for the Leasts, 약어 WMSL)가 창립됐다. 작은자복지선교회는 예장(통합) 교단 차원의 기구로서 예장(통합) 사회부,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한아협의 예장(통합) 관계자들의 연합으로 이루어진 기구이다. 따라서 다른 교단 구세군, 기독교장로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관계자는 참여하지 않았다.

2) 작은자복지선교회의 사업범위 확장

한아협에서 발전되어 온 작은자복지선교회의 사업적 특징은 첫째, 복지서비스의 대상을 확장시켰고 둘째, 새로운 시설을 설립해 후원하기도 하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요 후원 대상으로 집중했던 아동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노인 장애인 그리고 한부모가족 (모자세대)도 선교회 사업의 대상으로 포함됐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필요와 요청이 있을 경우 해당지역에 새로운 시설을 설립하여 후원하기도 했다. 작은자복지선교회에서는 사업의 대상과 범위를 "오늘날 산업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제반 사회문제"로 규정하면서 사업범위의 제한성이 없어졌다.

3) 작은자복지선교회의 조직

작은자복지선교회의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작은자후원회라는 별개의 조직을 운영했고 작은자후원회의 총회와 임원회에서 주요 사안들을 논의, 결정했다. 작은자후원회는 연곡작은자의 집(장애인시설)을 기도와 후원으로 도왔고, 낙후지역의 어린이들에게는 후원자와의 결연후원을, 그리고 심장병 어린이에게는 무료수술을 지원했다.

1985년 9월 국내모금에는 14명의 후원자가 참여했고 이듬해인 1986년에는 국내후원자개발을 좀 더 활성화하기 위해 팜플렛 2500부를 제작하여 배포했다. 여러 교회의 여전도회 집회, 교회 헌신예배 설교, 에스더 구국봉사대 등을 통하여 전달하였고 그 결과 국내 후원의 첫 사례로서 강원도 탄광지역의 어린이들이 연동교회 여전도회의 후원을 받게 되었다. 작은자후원회의 후원자였던 이화여대 부속병원 흉부외과 김광호 박사와 이영우 박사는 심장병 어린이 무료집도로 전문 자원봉사를 제공하였다. 김광호 박사의 친구는 5억원을 후원하여, 심장병어린이 4명이 수술을 받고 건강한 삶을 찾게 됐다.

1986년 9월에는 '선교와 사회복지'가 발간됐다. 이 회보는 한아협 운영위원, 산하시설의 시설장, 교사들, 국내외후원자, 후원아동, 후원단체에 배포됐다. 1986년 모금활동에는 개인 24명, 7개 교회, 1개 선교회, 1개 학교 어머니모임, 2개 여전도회, 미국 시카고, LA, 캘리포니아 등지의 교포 10명, 6개의 미국교회가 참여하여 891만 2715원이 모금됐다. 이 후원금으로는 25명의 어린이와 4개의 어린이집과 유아원을 후원할 수 있었다.

4) 해외후원사업 계획

작은자복지선교회는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갈 6:2)는 말씀에 근거해 해외 아동복지선교사업을 계획했다. 빈부의 격차가 날로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에서 국내에도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나 학생이 아직 많이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나 동남아, 중남미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고통당하는 어린 심령들의 어렵고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인 줄 믿고 해외후원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동안 독일KNH를 통해 우리 아동들에게 전달됐던 사랑을 인도네시아에서의 탁아소 건립 지원, 필리핀 기독대학 학생지원 등으로 나누게 됐다. 이 과정에서는 KNH의 지원을 받으면서 체험하고 학습했던 후원결연 사업의 방법이 바람직한 협력 방향을 찾아가는데 큰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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