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도회 연재 '작은자운동 45년'

[ 여전도회 ]

한국기독공보
2020년 01월 23일(목) 09:28
1. 작은자운동의 시작

1971년 10월 3일 청계천 활빈교회 창립예배 (김진홍 전도사)

1971년 11월 1일 성남 단대1리 판자촌지역에 서울고등공민학교 설립 (최규성 전도사)

1972년 서울 망원동 빈민선교 (장로회신학대학, 주선애 교수 협력)

1973년 노무라 모토유지 목사 청계천 활빈교회 방문, 독일KNH(Kindernothhilfe) 본부 방문, 활빈교회 사역소개, 활빈교회 후원요청

1974년 노무라 목사 일본교인 밀알회(보리한톨모임)를 조직하여 후원 시작 (활빈교회)

1974년 독일KNH의 후원 시작 (활빈교회 활빈탁아소 등)

1975년 청계천 철거주민의 남양만 이주, KNH의 아동복지사업지원 시작 (남양만 이화리 활빈유아원 후원)

1977년 7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의 관련인 9인(남양만지역사회선교위원회 결성) 경기노회 남양만선교위원회 발족, 11월 KNH 루어스 총무 방문

1978년 예수공동체(김진홍 목사), 남양만으로 이주한 청계천 주민과 전국에서 모인 주민들 중심으로 남양만지역개발 준비

1977~79년 국제워크캠프(International Work Camp), 독일인 일본인 후원자모임 3년 동안 3차례 진행, KNH의 후원은 남양만간척지, 인천, 제주, 성남 등 지역적으로 확산

1980년 KNH 후원사업 (어린이 사역에 중점) 황화자 전도사, 남양만지역 6개 어린이집과 독일 KNH 교량역할로서의 조정관 업무 시작

2. 'KNH한국협의회'에서 '사회복지법인' 설립까지

(1) 1980년 KNH한국협의회 발족

KNH한국협의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장로회, 구세군 등 3개 교단의 초교파적인 조직으로 발족되었고 10개 이상의 탁아소를 지원하였다. (1982년 명칭 변경)

(2) 1982년~1992년 한독아동복지선교협의회 (약칭, 한아협)

1) 한아협의 조직과 행정

한아협의 행정실무(총무)는 황화자 전도사가 맡았다. 한아협은 초교파적인 조직으로 1985년 기독교감리회 교단이 가입하여 4개 교단이 되었다. 효율적인 시설운영과 KNH 결연아동과 독일 후원자간의 교류, 그리고 교사교육과 자립대책 등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조직들을 운영하였다. 1984년에는 18개 시설의 시설장으로 한아협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였고, 매년 1월에는 한아협 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리고 한아협 임원회는 1991년 까지 총 37회의 회의를 가졌다. 1991년까지 KNH의 결연아동은 1147명이었고, 후원금은 총 2억 7872만 1000원이었다. 1984년에서 1993년까지 한아협 시설장회의에서는 시설운영, 교사교육, 자립대책 등 문제에 대한 논의와 해결방안을 모색하였다. 1993년 11월 18일에는 KNH후원 종결에 관련된 의견을 개진하였다.

2) 한아협 사업

예수교장로회(통합), 구세군, 기독교장로회(동인천 도시산업선교센터)의 주된 사업은 도시빈민과 농촌지역의 유아원(어린이집의 원형), 그리고 유아원시설을 이용한 초등학생들과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사업(지역아동센터의 원형)이었다. 구세군후생학원의 후원으로 보육사업이 추가되었고, 구세군 직업훈련원과 성남제일실업학교를 통한 청소년기술교육과 야학도 있었다. 그러므로 1981년도 당시 한아협의 주요 사업은 KNH의 후원으로 유아원, 방과 후 공부방, 보육원, 청소년 기술교육과 야학 등의 아동복지사업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1986년 한아협 안내서를 보면 한아협의 주된 사업은 불우 아동지원사업, 교육훈련 및 프로그램개발사업, 장애인복지사업으로 요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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